석유공사와 삼성물산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올 1월 미국 테일러에너지사의 멕시코만 유전을 사들인 것이 큰 화제가 됐다. 세계적 명망을 가진 기업들이 참여한 공개 입찰이었던 만큼 한국 기업의 승리를 점치는 전망은 거의 없었는데, 그 예상을 깬 것이다.
더구나 이 유전은 확인된 매장량이 6,100만 배럴에 달해 우리 기업이 도전한 해외 자원개발 사례로는 최대 규모였다. 온갖 정보사냥꾼들이 날뛰고 순간 순간 희비가 엇갈리는 이 업계의 경쟁에서 한국 컨소시엄이 승리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역설적으로 그것은 ‘정보의 힘’이었다.
▦ 한국 컨소시엄은 두뇌와 감성, 두 가지를 모두 무기로 삼았다. 미국계 투자은행 메릴린치를 주자문사로 선정하고 현지 사정에 밝은 몇몇 에이전트와 손을 잡은 것은 전자의 경우다. 하지만 결정적인 카드는 상대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었다. 테일러에너지 회장인 필리스 테일러의 남편이자 전 회장인 페이트릭 테일러는 2004년 사망할 때까지 집안 사정이 어려워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들을 위한 교육 자선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정보를 얻은 한국측은 프리젠테이션의 초점을 페이트릭의 업적에 맞췄다.
▦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국측이 페이트릭의 일대기를 섞어가며 그의 높은 뜻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하자 필리스 회장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결국 더 높은 가격을 써낸 경쟁자가 있었지만 한국 컨소시엄을 매각 파트너로 낙점했다. 이 사례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협상에서도 ‘인간의 얼굴’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내가 요구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술’로 정의되는 협상의 성격을 꿰뚫고 상대의 감정선을 제대로 짚어낸 결과다.
▦ 정부가 미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 중단을 공식 요청했다. 미국과 추가협의 끝에 얻어낸 ‘광우병 발생시 수입중단’ 등을 자랑하며 더 이상의 요구는 어렵다고 강변하더니, 스스로 말을 뒤집은 셈이다. 하지만 공식 요청의 성격이 모호해 당장 미국측이 반발하고 국내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재협상인지, 추가 협의인지, 상대의 선처만 바라는 것인지, 정부의 입장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시간과 전략의 함수인 협상학의 관점에서 최악의 사례 중 하나로 인용될 이번 거래의 유일한 성과는 이명박 정부의 밑천을 낱낱이 드러낸 것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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