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들 완전 ‘더블 커맨드’로 나와.”
“그럼, 우린 ‘저글링 러시’다.”
담배 연기 폴폴 나는 PC방의 대화일까?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반대하는 촛불집회 현장이다. LA갈비 수입이 중단된 지 5년째인 올해는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수입된 지 1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선수보다 프로게이머가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가 야구보다 자주 TV에서 중계되는 2008년의 대한민국. 검은 헬멧에 방호복을 입고, 상관의 명령을 복창하며 뛰어다니는 전투경찰이 ‘테란 마린’으로 보이는 게 이상할 것 없다. 촛불을 든 어린 손들에게 닭장차는 ‘배럭’, 코끼리차는 ‘시즈 탱크’다. 시국의 현장에서도 그들의 머릿속은 여전히 ‘접속 중’이다.
■ Step.1 ‘On’line - 말을 건네다
인터넷 보급이 막 시작되던 1990년대 중반, 고스톱 포커 테트리스 등 컴퓨터 게임은 혁명적 전환을 맞이한다. 기계(컴퓨터) 대 사람의 삭막하던 대결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사람 대 사람의 대결로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우스 조작으로 화투장을 내려놓으며 모니터 구석에 마련된 대화창을 통해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작은 소통이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게임을 통해 얻으려는 재미의 중심은 말초신경의 반복성 자극에서 네트워크를 통한 온라인 소통으로 옮아갔다. 스타크래프트는 그 변화를 이끄는 견인차였다.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외국에서는 진짜 마니아들이나 하는 이 게임이 한국에서는 국민 게임이 됐다는 것은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의 소통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보여준다.
10, 20대들은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네트워크를 이뤘고, 이 네트워크는 온ㆍ오프 라인을 넘나들며 확대됐다. 골목마다 들어서는 PC방은 오락실이 아니라 중중무진으로 펼쳐진 ‘소통 공간의 터미널’이었다.
■ Step.2 스토리의 탄생 - 사이버 대륙의 탄생
온라인게임이 다양화되면서 사람들은 프로그램된 테두리 속에서 정형화된 플레이를 하는 데서 벗어나 점점 프로그램의 주체가 되길 원했다. 스타크래프트의 공동 정복과 공동 방어라는 단순한 패턴은 온라인으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기호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부수고 지키는 ‘한 판’의 반복을 벗어나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원했다. 그래서 리니지, 라그나로크, WOW 같은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이 인기를 얻었다.
MMORPG의 가장 큰 특징은 플레이어들이 스스로의 스토리를 구성해 간다는 것이다. 이 게임들은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그리고 모든 순간이 서로 다른 게임이다. 또한 이들이 만들어 가는 스토리는 현실을 닮았다. 게임 속에는 공동체가 있고 배반이 있으며, 전략이 있고 능력에 따른 차별이 있다. 리니지와 WOW는 플레이어들이 만든 또 하나의 대륙이다.
■ Step.3 MMORPG - 네트워크 속에서의 삶
온라인게임의 대세로 자리잡은 MMORPG는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삶 그 자체다. 그들은 게임 속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스스로의 평판을 걱정하며, 자기만의 재미를 추구한다. 지위와 명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고 때론 속임수로 남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렇게 게임 속에서 협력하고 경쟁하는 캐릭터들은 컴퓨터의 인공지능에 의한 ‘사이버 무기물’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어디선가 ‘접속하고 있는 인간’이다.
따라서 중독성과 충동억제력 감퇴, 자극추구 성향 등 기존 오락을 비판하는 수단에 들이대던 잣대로는 온라인게임을 규정짓기 힘들다. MMORPG는 탈사회적 요소와 함께 공동체의 특성도 지니며, 개인적 성장이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공각기동대’ 등 SF영화가 예견하는, 인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 방향이 진화인지 퇴화인지 아직 단정짓기는 힘들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온라인 네트워크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 내 몸은 게임과 전쟁중
하루 평균 3시간씩, 면벽수행하듯 모니터 앞에 꼼짝않고 앉아 온라인게임에 몰두해도 우리 몸에는 이상이 없는 걸까. 길드를 이끌고 적의 성을 쳐부수러 갈 때,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에 대해 알아보자.
■ 뇌
뇌의 특정 부위의 피로도가 높아져 종합적 사고력은 떨어지는 반면 우울증, 집중력 감퇴 등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판적 사고 능력보다 정보 습득이 빠른 어린 세대에게 온라인게임의 폭력성은 쉽게 전이된다. 게임 캐릭터의 선정적 옷차림이 왜곡된 성 의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 눈
컴퓨터게임에 몰입하고 있을 때는 눈을 깜박이는 횟수가 평상시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안구 표면 눈물막의 증발이 쉽게 일어나 눈이 마르고 뻑뻑한 증상이 생기기 쉽다. ‘카트라이더’나 ‘피파온라인’ 등 정면을 계속 응시해야 하는 게임일수록 이런 증상이 심하다.
■ 목
오랫동안 모니터를 응시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목을 빼서 컴퓨터를 바라보게 된다. 반면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목뼈를 지탱하는 목 뒷부분의 근육과 인대가 과도한 힘을 받는다. 이 자세가 장기간 지속되면 가만히 서 있어도 머리가 앞으로 나와 있는 ‘거북목 증후군’이 발생한다.
■ 어깨
별다른 이상이 없이도 목에서부터 어깨, 허리, 엉덩이의 근육이 쑤시는 증상을 느낄 수 있다. 만져보면 목에서 어깨로 내려오는 부분에 돌처럼 딱딱한 부위가 있는데, 어깨의 근육조직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근막동통 증후군’이라는 질환으로, 잘못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할 때 생긴다.
■ 손목
키보드와 마우스 조작을 오랫동안 반복하면 손목에서부터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정중신경이 압박을 받는다. 증상이 갑자기 발생하지 않고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한 혈액순환 장애로 여기기 쉽다. 휴대전화, DMB 등을 자주 사용할 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 온라인게임 강자 현실세계까지 지배하다
오후 1시 학교에서 돌아오면 메이플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자전거 경주를 벌인다. 배가 출출해지면 근처 편의점에 들러 메이플 빵을 사먹고, 집으로 돌아가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메이플 스토리’를 본다. 저녁을 먹고 숙제를 마치면 30분간 컴퓨터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 ‘메이플 스토리’에 접속해 새로운 캐릭터의 코디에 몰두한다. 새 주인공 ‘아루’를 장식해주려고 아이템을 마련하기 위해 아껴둔 용돈으로 사이머 머니를 구입한다.
온라인게임 ‘메이플 스토리’ 마니아인 초등학교 2학년 A군의 일상이다. 올해로 탄생 10주년을 맞은 온라인게임은 더 이상 컴퓨터 모니터 안의 가상세계에 그치지 않는다. 유명 게임의 캐릭터들은 컴퓨터를 뛰쳐나와 문구, 스포츠용품, 패션잡화, 식품 등으로 온라인에서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친숙하게 자리잡았다.
■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각광
온라임게임 캐릭터 라이선싱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넥슨의 ‘메이플 스토리’다. 주인공 아루가 역경을 극복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는 밝은 게임 스토리를 기반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마법사, 전사 등 캐릭터 상품만 700여종을 개발했다. 문구와 장난감에서 나아가 지난해에는 ㈜삼립식품과 ‘메이플 빵’을 만들었고, 올해는 ㈜삼천리자전거와 손잡고 ‘메이플 자전거’를 출시했다.
국내외 방송ㆍ출판 시장에서도 온라인게임은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라비티의 인기 게임인 ‘라그나로크’는 온라인게임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해외에서 눈길을 끈 선두주자. 2004년 한·일 합작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일본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됐다. 이후 ‘메이플 스토리’ 애니메이션이 지난해 일본에서 방영돼 5%의 시청률을 올렸고, 4월부터 한국에서도 방영중이다. ‘메이플 스토리’는 2004년 총 26권 분량의 만화책으로도 출간, 누적 판매부수 700만부를 기록했다. 최영우 넥슨 홍보팀장은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게임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 진출과 종합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업계에선 노출 효과가 뛰어난 온라인게임을 ‘타킷 마케팅’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의 간접광고는 2000년 넥슨이 퀴즈게임 ‘큐 플레이(퀴즈퀴즈)’에서 실제 의류 브랜드를 활용해 캐릭터 의상을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에서는 차 모형을 BMW 미니로 선보이는 등 확대되고 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온라인게임 광고는 회원들의 로그인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타깃 마케팅이 용이하고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으로 지속적으로 회원이 증가하는 등 신성장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 가상세계 자체가 거대한 시장
온라인게임 내의 가상세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된 지는 오래다.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연 2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을 뒷받침하는 건 바로 유저(사용자)들의 아이템(게임 캐릭터들의 의상이나 장비) 거래다.
사단법인 콘텐츠경영연구소 원은섭 기획팀장은 “현실세계에서는 자신의 일과 역할이 한정돼 있는데 반해, 가상세계에서는 자신을 대변하는 아바타를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가꾸고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아바타 치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온라인게임의 커뮤니티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게임 대결까지 상호작용이 활발한 공간이기 때문에 유저들이 가상세계에 쉽게 몰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몰입성 때문에 게임 중독이나 아이템 현물 거래 사기 등 부작용도 속출한다. 원 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게임 산업은 지난 10년간 국내외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수익창출 모델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 '리니지' '스타크' 이후질·양면서 비약적 확장
온라인게임의 역사는 인터넷의 보급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PC방이 출현하기 시작한 1998년을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눠볼 수 있다. 온라인게임은 그 시작부터 공동체와 그 속에서의 책임에 익숙하도록 교육받아온 한국인에게 꼭 어울리는 여흥으로 자리잡았다.
온라인게임의 시조는 단연 ‘쥐라기 공원’ ‘단군의 땅’ 등 1994년 PC통신을 기반으로 퍼진 일명 머드게임(MUDㆍ멀티 유저 게임)들이다. 머드 게임은 그래픽이 사용되지 않고 텍스트만으로 유저들이 게임에 참여해 공동의 임무를 달성하는 내용으로, 데이터 전송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기초적인 온라인게임으로 인기를 모았다. 이때의 머드 게임들은 당시 유행하던 놀이문화인 채팅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래픽과 캐릭터가 온라인게임에 가미되고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개발된 넥슨의 ‘바람의 나라’부터다. 이전의 머드 적인 성격에 그래픽이 가미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바람의 나라’와 함께 온라인게임 시대의 토대가 된 것은 엔씨소프트가 1997년 9월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 일명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ㆍ수천명의 유저가 동시간에 가상공간에 모여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게임) 시스템의 표본 모델이 된 ‘리니지’는 국내 최대 동시접속자 수 18만명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리니지’에 이어 본격적인 온라인게임 시대를 연 주인공은 1998년 유행하기 시작한 블리자드의 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다. 스타크래프트는 다양한 캐릭터, 마치 바둑처럼 다양한 수가 존재하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특징이 한국의 게임유저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해 선풍을 일으켰다. 온라인으로 전세계의 유저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전적을 쌓을 수 있는 시스템은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 만든 밑거름이 됐다. 약칭 ‘스타크’로 불린 이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소비자, 인프라(PC방), 콘텐츠(다양한 게임 발매)의 3박자가 갖춰진 최상의 성장환경을 갖추게 된다.
권순성 네오위즈 게임아카데미 교육본부장은 “리니지와 스타크래프 등으로 온라인게임에서 화려한 그래픽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이후 스타일리시한 웹젠의 ‘뮤’,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등 수준높은 게임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수 있었다”며 “1인칭 슈팅 온라인게임, 보드게임(고스톱, 포커 등)의 보급도 해외보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더욱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다소 마니아적인 이런 게임들과 달리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온라인게임도 1990년대 말부터 보편화됐다. 2001년 회원수 1,000만 명을 돌파한 ‘포트리스’, 골프게임 ‘팡야’, 자동차경주게임 ‘카트라이더’ 등은 2000년대 중반까지 시장을 지배했다.
온라임게임의 급성장세는 IT 붐의 쇠락과 함께 최근 들어 속도를 늦추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블리자드의 블록버스터 ‘스타크래프트2’가 시판을 앞두고 있고, 가상현실 체험 게임 ‘세컨드 라이프’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등 세계적인 온라인게임 환경이 악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