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볼 것이 왜 이리도 많은지, 해외출장이라도 한번 다녀오면 뒤쳐진 시간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자동차도 흔치 않았던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초등학교 어린시절 동화책 한 권을 손 때가 새까맣게 묻어 종이가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보았던 그 때가 가끔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볼 것이 정말 귀했던 시절이었다.
현대를 ‘정보의 홍수시대’라고 부른 지는 이미 오래 됐지만, 그 정보의 속도와 양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정보기술(IT) 기술이 아닐까 싶다. IT는 분명히 바쁜 현대인에게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소통해 주는 고마운 존재가 됐지만, 그 때문에 가슴 속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은근한 맛’ 같은 것을 잊고 사는 것도 사실이다.
수줍던 학창시절 밤늦도록 쓰고 또 지우고 찢고 다시 써 내려갔던 연애편지는 이제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간단히 대신하게 됐다. 온 동네를 돌면서 아이의 돌떡을 돌리던 예전 우리 어머니들과, 돌쟁이 아기의 동영상까지 들어간 돌잔치 초대장을 이메일로 보내는 지금의 젊은 엄마들의 모습은 IT가 만들어낸 우리 삶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동통신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필자가 IT기술 때문에 살기가 너무 팍팍해졌다는 이야기를 하겠는가 마는, 그래도 IT에 ‘고향의 맛’을 싣고 ‘한국의 정취’까지 넣을 수 있다면 정보의 속도와 양으로 승부를 보는 IT 세상에서도 사람 사는 ‘맛’을 살릴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이 시대의 석학 이어령 선생은 한국 사람들의 블로그가 주로 텍스트 위주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정보를 전하는 서양 사람들의 그것 보다는 그림과 영상, 음악이 많아 은근한 살 냄새와 체온이 느껴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분명 IT는 스스로 차갑거나 팍팍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격과 사는 모양에 따라 차가운 기계냄새가 날 수도 있고, 따스한 살 냄새가 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영주 KTF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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