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일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출 중단을 요청한 것은 일단은 미국과의 외교ㆍ통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는 미측에 협조요청을 한 것이지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을 요구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날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3차 고위 당정협의회 후 기자들에게 “당분간 국민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30개월 이상 소가 수입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요청이 미칠 외교적 파장은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쇠고기 문제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고 했지만 이는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사실 미국산 쇠고기 위생검역조건 고시의 관보 게재를 보류하고,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 내용에 반하는 요청을 한 우리 측은 공신력이 크게 훼손됐다.
특히 향후 한미 간 양자 현안을 다룰 협상과 협의에도 악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이날 오후 유 장관과의 면담 후 기자들에게 “과학에 기초를 둔 합의였음에도 한국정부가 관보 게재를 연기한 데 대해 우리가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 이번 쇠고기 파동 해결을 위해 우리 측이 미국의 선의에 호소한 상황인 만큼 향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나 주한미군 기지 이전 오염처리 문제 등 양자 현안 협상에서 우리측이 ‘냉정한 계산’을 하기 어렵게 될 전망이다.
만에 하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군사이슈를 다루는 협상에서 미측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합의 결과를 뒤집는 사태가 오더라도 우리 측이 반발하지 못하는 빌미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실제로 유력한 대선후보인 버럭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은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따라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입을 막기 위한 재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면 사실상 무역보복 등 통상마찰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한미 관계에도 짙은 상흔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버시바우 대사가 “과학에 근거를 둔 합의이기 때문에 재협상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미측도 합의 문구를 뜯어고치는 문제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건강문제가 걸린 무역협상에서 한미정상회담과 연관돼 상대적으로 쫓기는 자세로 임한 협상태도, 중요문구를 오역하는 등의 실책, 그리고 그 결과가 국민적 저항을 부른 것도 문제지만 향후 통상 및 외교적으로 무시 못할 부담이 커지는 상황도 우리에게는 뼈아프다.
정진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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