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의 재협상 방침을 확정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어제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해 수출을 중단해 주도록 미국측에 요청했다”며 “미국이 이에 대해 답할 때까지 고시를 유보하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도 당연히 중단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외교적 부담을 의식, ‘재협상’이라는 말을 아꼈지만 월령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했던 합의를 실질적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촛불시위로 표현된 비판적 여론에 항복한 셈이다.
물론 이런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일지, 미국이 월령 30개월이 넘은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는 구체적 방법이 어떤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기존의 수입위생조건을 그대로 두고 미국이 자율 규제를 하는 방식이나 아예 수입위생조건을 손질하는 방안 등이 모두 가능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 정부가 고심 끝에 꺼내든 카드를 미국이 쉽사리 뿌리치기는 어렵다.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전체 수출량의 3~5%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하면 미국이 일부 명분의 손상을 겪더라도 실리를 취하는 것이 우선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재협상이 필요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한국을 단순히 무역 상대국이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으로 여긴다면 한국 정부의 궁지를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뒤늦게나마 정부가 국민 일반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침을 정한 데 대해 안도한다. 재협상인지 추가 협의인지,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막을 장치가 어떤 형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적 우려를 씻을 수 있는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면 된다. 이왕 외교적 신의성실의 원칙에 일부 금이 간 만큼 정부로서는 최대한 우리 기준을 앞세운 안전대책을 따내야 한다.
희망대로 미국측이 적극적으로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응할 수 있다면 일단 ‘30개월 이상 쇠고기’ 문제는 해결된다. 남은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것이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특정 위험물질(SRM) 적용 문제다. 정부는 여러 차례 ‘미국 기준’이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국민 불신이 뿌리깊어 일반적 확신이 없다. 상징적으로라도 거듭 확언할 수 있다면 국민불만 해소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로써 ‘광우병 우려’의 핵심 문제는 해결될 모양이다. 그런데도 통합민주당은 ‘재협상’ 주장에 얽매여 “미봉책” “기만적 행동” 운운한다. 그 동안의 반대와 비판이 국민불안을 최소화하자는 게 아니라 정부-여당의 허점을 후비자는 것이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사실상의 재협상 요구를 내놓은 마당에 더 갈 데가 또 있을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제부터는 정말 차분히 따져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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