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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사회/ (下) 1인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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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사회/ (下) 1인 가구

입력
2008.06.0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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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27.가명)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이른바 ‘나홀로 족(族)’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 준비를 위해 2년째 고시원 신세를 지고 있다.

고시원 생활은 그에게 생소했지만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뿌듯함과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떴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시원 생활 6개월도 안돼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어색하다.

■ 나홀로족 10년 새 2배 늘어

박씨 처럼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외로움을 감수하고 결혼을 늦추면서 국가 고시나 대기업 취업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겼지만 돈벌이는 괜찮은, 30대 후반의 ‘골드싱글’이 한참 어린 연하의 이성을 찾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35~39세 1인 가구는 1995년 12만4,000여명에서 2005년 26만5,000여명으로 10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었다.

자식들을 위해 올인하는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 강남의 유명학원 강사인 오태영(47ㆍ가명)씨는 대학강사인 아내와 14세, 16세인 두 아들을 2년 전 영국으로 유학 보내고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오씨는 “아이들이 국내 대학에 들어가봤자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오는 것보다 못한 현실에서 나만 고생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내 유학길에 아이들을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외로움이 가장 큰 적”이라며 “몇 년 전만 해도 기러기 아빠의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지만, 요즘에는 너무 흔해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는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40~50대 1인 가구는 기러기 부모의 증가가 인구 1,000명 당 1.5명이던 이혼율이 2005년 2.6으로 증가한 것과 맞물리면서 폭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림동과 강남구 역삼동 등은 1인 가구의 천국이다. 신림동 고시원은 월 20만~35만원, 원룸은 30만~50만원에 얻을 수 있어 고시생뿐만 아니라 직장인들까지 대거 몰려 들고 있다. 신림동 A부동산 관계자는 “신림동에만 3만~5만여명이 머물고 있고, 원룸과 고시원 건물은 600개를 넘는다”고 소개했다.

■ 산업형태도 확 바꿔

1인 가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산업의 형태도 확 바꿔 놓았다. 신림동과 동작구 노량진동 등 고시생이 많은 곳에는 수년 전부터 1인 식당이 인기를 얻고 있다. 벽을 보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바(Bar)형 구조가 벽을 따라 이어져 있고, 중앙에는 음식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 식당이 많다.

다른 사람과 어색하게 시선을 교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종 잡지와 신문이 3부씩 마련돼 있으며, 벽에는 상식과 명언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신림동에만 이런 식당은 30여 곳에 이른다.

강남의 오피스텔 밀집가에는 코인(동전) 세탁소가 등장한지 꽤 됐다. 옷가지부터 이불까지 세탁과 건조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어 주말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한 세탁소 주인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용 고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경쟁 업체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들도 ‘나홀로 족’ 모시기에 혈안이다. 신세계 이마트는 지난해 7월 광주 봉선점에 1~2인용 소용량 상품만 모은 ‘미니미니존’을 열었다. 1미터 남짓한 판매대에서 월 매출이 500만원에 달하자 이 업체는 신도림점, 여주점, 동탄점, 여의도점 등에 잇따라 ‘미니미니존’을 설치했다.

한 인터넷 쇼핑몰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알맞은 소형 전기밥솥이나 미니세탁기, 쌀 씻는 기구, 호신용 호각 등만을 취급하면서도 매달 수 백 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중섭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독신이나 이혼을 ‘화려한 싱글’이나 ‘돌아온 싱글’로 묘사하는 세태가 청장년층 1인 가구 증가의 주된 원인”이라며 “그러나 각종 범죄와 자살 증가 등 그늘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화려한 싱글' 이면엔

나홀로 청년층의 증가는 두드러진 사회 현상의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1인 가구를 겨냥한 새로운 산업구조 유발 등 긍정적인 측면 뒤에는 성범죄 및 청년 자살의 증가 등 어두운 그늘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경악시켰던 경기 안양 초등생 납치 살해사건 범인 정모(28)씨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게 심리학자들의 대셈岵?분석이다. 단칸 셋방에서 혼자 살던 그는 지난해 12월 초등 여학생 2명을 살해했다. 범행 이 전에는 전화방 도우미를 납치해 성폭행한 사실도 확인됐다.

심리학자들은 "정씨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은 변태적인 포르노물 심취와 깊은 관계가 있다"며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않은 그에게 포르노물을 통한 그릇된 성의식이 자리잡았고, 결과적으로 끔찍한 범죄를 유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비슷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체 범죄건수가 줄면서 성범죄도 감소 추세지만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성범죄는 오히려 늘고 있다"며 "가해자는 정상적인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2월 경기 고양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초등생을 무차별 폭행한 이모(41)씨 사건도 30~40대 독신 남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범행으로 '소아기호증'의 전형이라고 경찰은 규정한 바 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심리적 기반이 취약한 30대의 자살도 증가세가 뚜렷하다. 인구 10만명 당 30대의 자살율은 1995년 25.2명에서 2000년 30.2명, 2005년 33.6명으로 크게 늘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급격히 개인화 하면서 사회 초년병이거나 조직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한 30대가 느끼는 고독감은 더욱 커진 반면 사회적 지지는 약해진 게 자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30대 나홀로족의 문제는 결혼 기피현상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며 "특히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복지시스템을 하루 속히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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