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15일이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이 된다. 이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를 놓고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치열한 담론들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남북분단의 계기가 됐다고 보는 진보진영에서는 올해를 '정부수립 60년'으로 평가하지만 대한민국의 발전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보수진영에서는 이를 '건국 60년'으로 규정해 왔다.
마침 진보학계를 대변하는 계간지 '역사비평'과 뉴라이트 계열의 '시대정신'은 여름호에서 대한민국정부수립과 이승만을 화두로 하는 기획을 동시에 선보이며 현대사 60년에 대한 양측의 시각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 역사비평 "건국과 분단 담론 모두 극복해야"
'이승만과 제1공화국- 분단과 건국의 담론을 넘어' 라는 기획제목이 상징하듯 '역사비평'은 건국담론의 지지자들이 시도하는 '이승만 신화화'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그를 '악마화' 해온 진보진영에 대해서도 성찰을 요구했다. 한말-식민지-건국기를 관통하는 이승만의 국제의식을 정치하게 고찰한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의 시각이 상징적이다.
그는 이승만의 과(過)와 공(功)을 균형있게 다룰 것을 주장한다. 부정할 수 없는 이승만의 기여로, 박 교수는 이승만이 미국과 직접 관계를 맺음으로써 한국문제를 전통적인 중국중심질서와 중ㆍ일 갈등구조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국제문제로 부각시킨 점을 꼽는다.
나아가 분단질서 고착의 책임소재와 관련해서는 김일성, 김구의 태도와 비교해보더라도 이승만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객관적 설득력이 없다고까지 평한다.
반면 그는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이를 타기한 점'은 분단고착의 책임을 묻는 것과 별개로 오롯이 이승만의 잘못이며, 일본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온건노선을 견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족인 북한에 대한 인식과 대처에서는 강경하고 폭력적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매섭게 질타한다.
정진아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종속적'이라고 비판받았던 이승만 정권 경제정책의 양면성을 조명한다. 정 교수는 그의 정책에 대해 대기업육성에 집중하고 원조에 지나치게 의존한 점도 있지만, 일본경제에 수직적으로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독자성을 추구한 자립지향성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김성보 편집주간은 "남북은 건국이후 근대개혁성과 자립성의 실현을 놓고 서로 경쟁해왔다"며 "탈분단 시대의 역사의식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통성 논쟁에서 벗어나야하며, 남북이 각각 나름대로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시대정신 "우파의 권위주의 통치 불가피함 인정해야"
'시대정신' 여름호에서는 '대한민국과 건국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보혁(保革) 지식인 사이에 논쟁이 불을 뿜었다. 보수적인 지식인(안병찬, 이인호, 노재봉)들이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성취는 대단한 역사적 성과"라는 입장에서 접근한 반면 진보 지식인들(김우창, 신복룡)은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미는 절반의 축복" 이라고 반박했다.
이승만ㆍ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후발국의 경우 민주주의 방식으로 산업화를 달성한 예는 역사적으로 한 건도 없다"(노재봉)
"일시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지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공주의와 같은 강력한 권위주의를 내세워 형식적인 민주주의나마 지킬 수 밖에 없었다"(안병직)는 우파지식인들의 옹호에 대해 "그렇다고 권위주의 권력으로 인하여 막대한 대가를 치른 것에 눈을 감을 수도 없다. 좋은 결과를 냈다고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없다"(김우창)는 반박이 이어졌다.
헌정질서의 성격규정에 관한 두 편의 기고문도 의미있다. 김세중 연세대 교수는 건국헌법의 정치경제조항에 나타난 평등주의적 성향에 대한 논란과 관련, "현실적 요청에 조응하여 평등지향적 요인을 도입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유재산 제도에 기반을 두는 시장경제 지향적 자본주의 체제"였다고 규정했다.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는 87년 헌법에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조문이 들어간 것은 대한민국의 체제변혁을 꾀하는 신호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시정부가 좌우합작 정부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이 반공국가에서 좌우합작국가로 변화한다는 의미이며, 결국 이는 지난 20년간의 좌파와 우파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이념적 내전위기를 야기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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