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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자서전, 낯선 필자… 얇아진 부피… 나도 한번 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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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자서전, 낯선 필자… 얇아진 부피… 나도 한번 내볼까

입력
2008.06.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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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고프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 나의 유일한 위안은 초등학교 앞 작은 빵집의 유리진열장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고소한 빵 냄새, 설탕가루가 솔솔 뿌려진 도넛은 나를 사로잡았다. 운이 좋은 날에 빵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그때의 빵 맛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김영모 <빵굽는 ceo>

# 제일모직을 함께 다니던 친구 녀석에게 제목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 친구가 웃으면서 되물었다. “제목은 죽이네. 맘에 아주 팍 와 닿아. 근데 이거 삼성에서 가만히 있겠어? 책도 못 내보고 사장되는 것 아냐?” 그렇게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한 기억이 떠오른다.- 우재오 <나는 삼성보다 내 인생이 더 좋다>

두꺼운 하드커버를 넘기면 어린 시절 흑백사진부터 시작한다. 순탄치 않은 유년기를 지나 질풍노도의 성장기, 시련과 영광이 씨줄날줄로 엮이며 인생의 정점을 향해 가는 청장년기가 이어진다.

마침내 다다른 황혼. 지난 생을 관조하는 잠언 한 토막을 남기며 책은 마무리된다. 먹먹한 감동 속에 다시 하드커버를 닫으면 표지에 ‘알 만한’ 이름이 박혀 있다. 이른바, 자서전이라는 책이다.

그러던 자서전이 가벼워졌다. 일단 외양부터 과거와는 다르다. 알록달록한 디자인과 얄팍한 부피는 자서전에 대한 선입견을 부숴놓는다. 내용은 더 가볍다. 일생을 정리하려는 거창한 시도는 아예 없다.

인생의 어느 시기, 특히 현재를 기록한 글이 많다. 자서전이라기보다 그냥 수필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엄연히 서점의 자서전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쓴 글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자서전이 기존의 것과 가장 다른 점은 저자의 무게. 간디, 스콧 니어링, 달라이 라마, 밥 딜런, 힐러리 클린턴 등등 자서전 하면 떠오르는 묵직한 이름은 오늘의 말랑말랑한 자서전과 거리가 멀다.

대신 표지의 낯선 얼굴 밑에는 ‘검정고시 출신 애널리스트’ ‘서울역 노숙자’ ‘공장 청소부’ ‘윤경이 엄마’ ‘아로마 전도사’ 등 무척 평범한 타이틀이 붙어 있다. 위인전과 경계가 모호하던 자서전이 이제 누구나 쓸 수 있는 책이 된 것이다.

자서전 쓰기가 대중화한 것은 독자들이 자서전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자서전은 교양서의 대명사였다. 독자들은 체 게바라나 찰리 채플린처럼, 선망하지만 감히 도전할 수 없었던 삶을 책으로나마 겪어보기 위해 자서전을 폈다.

그러나 타인의 삶을 통한 성찰이나 인생의 교훈은 현대의 독자들에게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니다. 서점에서 자서전을 뒤적이는 사람들이 찾는 것은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롤 모델이다. 인간 승리나 철학적 사색의 자리를 밀어내고, ‘실용’이 자서전 코너의 중심을 차지했다.

따라서 전체 독자가 아닌 특정한 독자층을 겨냥한 자서전이 봇물을 이룬다. 구직자들은 <나는 희망을 스카우트한다> (우순신)를 읽으며 자신의 ‘스펙’을 점검하고, 소규모 자영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석봉 토스트, 연봉 1억 신화> (김석봉)를 교과서처럼 반복해 읽는다. 버거울 정도의 교육열은 조기유학에 성공한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유학생들까지 자서전을 쓰게 만들고 있다.

이런 경향은 자서전의 디자인과 구성도 바꾸고 있다. 다채로운 디자인은 기본이고 입시수험서처럼 중요한 부분을 큼지막하게 키운 편집도 눈에 띈다. 축구스타 박지성의 <멈추지 않는 도전> 은 아예 한 챕터의 분량이 2~3쪽에 불과하다.

타블로이드 소설이나 연예 주간지의 칼럼 읽듯, 자서전도 그렇게 ‘소비하는’ 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마음 먹으면 누구나 쓸 수 있고 한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떠 먹으며 보는 책, 그게 21세기의 자서전이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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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물장수 성공담·할머니 육아일기… 알록달록 삶에 푹~

요즘 자서전은 유명인의 완성된 성공 스토리에 국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유명인이 대업을 이룬 극적인 순간이나 그의 숨겨진 가족사보다, 오늘을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다이어리 같은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인다.

폐지 수집의 노하우를 전하며 “인생을 살 만한 것”이라고 등을 다독여주는 고물장수, 1950년대 배곯던 시절의 그림육아일기를 꺼내 애잔한 자식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팔순의 어머니. 보통사람들의 알록달록 자서전을 들여다보자.

■ 힘들었던 삶이 책이 된다

<무일푼 고물장수로 12억 벌기> (블루미디어 발행ㆍ2008)의 김창남씨는 고물 수집으로 12억을 벌었다. 김씨는 이 책에서 놀랍도록 체계적인 고물 수집 노하우를 전한다. 시장조사, 납품업체 선정, 광고 협상, 종류별 수거방법 등 구체적인 사업 노하우가 알뜰하게 담겨 있다.

물론 김씨가 고물 수집으로 억대의 돈 버는 법을 전하는 경영서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군대에서 허리를 다쳐 고질병을 앓았던 그가 30kg이 넘는 고물을 지고 내리기 위해 남보다 3배 이상의 노력을 한 경험을 담고 있다.

김씨는 “직장을 잃어 생계가 위태로운 가장, 저임금 아르바이트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힌다. ‘그러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 (한국방송출판 발행ㆍ2001)는 여든이 넘은 박정희씨가 50년 전의 육아 비법을 전하는 자서전이다. 5남매를 키우며 10여년간 육아그림일기를 쓴 그의 이야기는 한 방송사에 휴먼 다큐멘터리로 방송됐고 책으로도 출판됐다.

육아일기를 쓰며 그림 솜씨를 닦았던 박씨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한국수채화협회 공모전에 입상하며 화가로 데뷔했고, 또 한 편의 에세이 식 자서전 <나의 수채화 인생> (미다스북스 발행ㆍ2005)도 펴냈다.

이 책에서는 육아 노하우에 이어 아버지(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와 의사인 남편, 화가가 된 첫딸 등의 이야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 이름은 없지만 이유는 있다

거대 기업을 일궜거나 고위공무원으로 이름이 신문에 오르내린 적은 없더라도, 역사의 현장을 발로 뛰었던 평범한 실무자들의 자서전도 있다. 칠순 혹은 팔순에 맞춰 가족과 친지, 이웃을 위해 500~1,000부 소량 출판을 목적으로 저술했기 때문에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검색으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얼굴 없는 자서전’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서는 누락될지 몰라도, 자서전에서는 우리 사회의 역동적인 현장을 지키고 일궈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다. 한국 화약산업의 산 증인인 박장경씨는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 (로즈앤북스 발행ㆍ2008)에서 일제시대 화약취급 면허를 취득하고 20여년간 공기업에 몸담았던 경험, 이후 화약판매업체를 운영해온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그의 인생은 한국 화약산업의 부침과 고스란히 맞물린다.

30년 전 비평준화를 기획했던 교육 실무자인 김정애씨는 <명모의 길> (삶과 꿈 발행2004)에서 “30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입시 열풍을 보며 그때의 결정이 옳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소회를 적었다.

나비넥타이 장사로 마련한 자금으로 평화시장에서 양복가게를 시작한 후 시장을 주식회사로 키운 전 평화시장㈜ 대표 이동표씨는 <지나온 길 되돌아보니> (신양사 발행ㆍ2006)를 냈다. 그의 이야기에는 197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의 분신이 겹쳐진다.

이들 모두는 노년에 이르러 우리 사회에 몸담고 살아온 자신의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려 할뿐, 그 삶이 얼마나 훌륭했는가 하는 점을 평가받거나 과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G마켓 출판담당 김세라 과장은 “최근 유명인들의 자서전은 대부분 신문을 검색하면 바로 알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거나 대필 작가를 고용했기 때문에 정보ㆍ감동의 면에서 독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최근 유명인의 자서전들이 이렇다 할 흥행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서전 전문 출판사 로즈앤북스 김혜라 대표는 “자서전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랑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후손에게 인생의 흔적과 정을 남기는 일”이라며 “훌륭한 인생을 살아왔든 그렇지 않든 모두의 삶은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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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서전, 잔잔한 감동이 인기비결… 블로그 문화도 한몫

시간이 갈수록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진다. 종교인이나 석학, 정치 지도자의 자서전 출간이 뜸해지는가 싶더니 스포츠 스타, 연예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 ‘일반인’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자서전이 주를 이룬다. 자서전을 기획하는 출판업자들이 그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자서전 쓰기 대중화의 결정적 바탕이 된 것은 블로그와 홈페이지 문화의 확산이다. 남창임 인터파크 홍보팀장은 “UCC 열풍처럼, 책에 있어서도 네티즌들은 단순한 수용자의 역할을 넘어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위치가 됐다”고 말한다.

재테크, 홈 인테리어, 여행 등의 주제에 대해 인기 블로거가 되면 그 온라인 콘텐츠가 곧바로 자서전 형태의 책 출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출판계에서 이런 책들은 ‘블룩’(blook)이라 불린다. 블로그(blog)와 북(book)의 합성어다. 온라인 공간에서 대중을 흡입하는 인기가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지기를 겨냥한 책들이다.

인터넷에서 검증된 대중성에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섞이며 하나의 성공 스토리가 된다. 방송 다큐멘터리 등에 출연해 갑작스레 유명세를 탄 보통사람이 자서전 출판을 기획하는 편집자들의 표적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 이야기를 읽는 듯한 진솔함도 일반인 자서전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대단한 업적, 격정적인 인생의 굴곡은 없지만 이들의 얘기 속엔 잔잔한 감동이 있다.

G마켓 출판 담당자는 “일반인의 자서전에는 대필 과정을 통해 윤색되고 과장된 유명인들의 자서전에 천편일률적인 성공 스토리 대신, 진실이 있다”며 “믿기 힘든 성공신화보다 솔직한 내면을 들려주는 에세이 형식의 자서전이 독자들에게 더 감동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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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 기자 shy@hk.co.kr

● 무턱대고 써보겠다고? '자서전 4계명' 챙겨라!

아무나 쓴다지만, 그래도 아무렇게나 쓸 수 없는 게 자서전. 출판까지의 기본적인 절차와 저술법이 있게 마련이다. 13년 동안 각계각층 숱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다듬어온 김혜라 로즈앤북스 대표에게 자서전 쓰기에 관한 몇 가지 조언을 들어봤다.

■ 목적을 분명히 하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자기 삶의 궤적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금전적 이득을 얻고 싶은 것인지, 출판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책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의도가 정해졌으면 이에 맞춰 해당 콘텐츠를 골라야 한다.

■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라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면 대필자에게 맡겨도 좋다. 하지만 글에 대한 기본 구상이나 자료 준비는 자신의 몫이다. 일단 간단하게 책의 목차를 만들어본 뒤 요긴하게 쓰일 만한 사진과 문서 등을 시기별로 정리해 놓아야 한다.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이력을 자세히 써보고, 그 중 자서전에 기록할 만한 시점을 따로 메모해 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 지나친 잘난 척은 금물

자화자찬 일색은 독자에게 거부감만 불러일으킨다. 자기자랑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무리하게 다른 사람의 업적을 자기 것인 양 서술할 수도 있다. 다른 서적의 내용을 도용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자서전도 정직이 최선이다.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성공담을 솔직하게 풀어놓을수록 독자의 가슴을 울릴 수 있다.

■ 발품 팔수록 좋은 자서전 나온다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선 발품이 중요하다. 대형문고를 직접 찾아가거나 인터넷서점을 살펴보고 몇 권의 자서전도 읽어봐야 한다. 타깃으로 삼는 독자층이 정해졌다면 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문체가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의 자서전을 내기 위해 여러 출판사의 조건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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