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의 지기(地氣)가 센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대찬 배우가 요렇게까지 축 처질 수 있을까. 김선아(33)는 병든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다. 인터뷰고 뭐고 그냥 좀 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는 성심껏 인터뷰에 응했지만 간간이 질문을 놓치고 멍하니 기자를 쳐다봤다. 퀭한 눈빛의 피로감 속에서 예의 찰진 발랄함을 캐낼 때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성숙한 느낌이요? 글쎄요 일부로 그렇게 한 건 아닌데…. <내 이름은 김삼순> 하고 3년 지났으니 그새 또 자랐나 보네요.(웃음) 캐릭터의 차이에서 오는 느낌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주로 싱글인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이번에는 아이가 딸린 엄마잖아요. 사실 (이번에 맡은) 미경이는 삼순이랑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내>
김선아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을 지그시 누른다. 몽실몽실 익살스러운 표정을 이끌고 가다가 “뭐시여, 이게!”하고 내지르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떼인 곗돈을 찾으러 나선 억센 네 여인네 이야기 <걸스카우트> 에서 그는 방방 뜨는 다른 세 여인을 잡아 묶는 추 역할이다. 여인들이 승합차 지붕 위에서 춤판을 벌일 때, 김선아만 바닥에서 그들을 쳐다본다. 걸스카우트>
“관객이 저에게 바라는 게 어떤 건지 잘 알아요. 코믹하고 괄괄한 김선아죠. 그걸 배제하는 데 따르는 불안함이 있었어요. 감독님도 저도 고민을 많이 했죠. 하지만 미경이 중심을 잡지 않으면 극이 흐트러지고 조합이 깨져 버리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튀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근데, 차 위는 진짜 올라가고 싶었는데….”
그간 김선아의 연기를 꼼꼼히 챙겨 본 관객은 <황산벌> (2003년)에서의 야멸친 계백장군 부인을 기억할 것이다. 열에 아홉은 ‘골목대장 언니’의 이미지로 김선아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는 무척 다양한 얼굴을 감추고 있다. 이미지의 변화에 대한 말을 꺼내자 김선아는 함께 연기한 나문희를 닮고 싶다고 했다. 황산벌>
“선생님 앞에는 ‘장르’가 없는 것 같아요. 작은 역이건 큰 역이건, 정극이건 코미디건, 선생님 연기에는 폭발하는 힘이 느껴져요. 대사가 없을 때도 선생님의 눈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장르, 역할마다 눈빛이 달라지는 배우. 그런 에너지를 지닌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런 느낌이 중요한 것이지, 이미지 변신을 해야겠다는 강박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마냥 털털하고 친근한 것이 가장 큰 매력인 배우. 하지만 ‘이웃 누나 같고, 옆집 언니 같다’는 것이 그에겐 매력인 동시에 벽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할 것 같은 이미지는 김선아라는 브랜드의 폭을 좁게 인식하게 만든다. 그의 익살이, 마지막 이 질문에야 터져 나왔다.
“저, 아.무.한.테.나. 친절하지, 않.아.요.” 북한 말투를 흉내내며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는 모습이 무공해 웃음을 터져 나오게 했다. “까칠해지려고 노력 중”이라는 이 배우,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 영화 '걸스카우트' "곗돈을 사수하라" 코미디+드라마+액션 비빔밥
아줌마, 미장원, 곗돈, 망나니 아들, 미사리 카페…. 신파조의 아침 TV드라마에 어울리는 재료로 한바탕 소동극을 만들었다. 곗돈을 떼 먹고 달아난 미장원 원장을 잡으러, 노란색 승합차를 탄 20, 30, 40, 60대 네 여인이 추격전을 벌인다.
4분의 1 가량의 코미디와 또 4분의 1쯤의 드라마, 과장 없는 액션이 취나물과 고사리처럼 한 데 비벼진다. 하지만 고추장이 좀 싱거운, 그런 비빔밥이다.
자 대고 이리저리 긋지 말고, 묵직해진 김선아의 표정과 스피디한 편집에 집중해 보면 꽤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흐름의 굵기가 일정치 않고 표면이 퍽 투박하지만, 말랑말랑 씹히는 맛이 나쁘지 않은 오락영화다.
인터넷 공간에서 인기를 끈 만화 <와탕카> 의 김석주 작가가 각본을 썼다. 반전이 불뚝한 만화처럼, 이 영화도 '한 방'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감독 김상만. 5일 개봉. 15세 관람가. 와탕카>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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