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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油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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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油亂'

입력
2008.06.0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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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연금 생활자들은 최근 고유가로 난방비를 걱정하고 있다. 유럽의 어민들과 화물트럭 운전사들도 지난달부터 정부의 유가 정책에 항의하면서 거리를 점령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저렴한 휘발유를 찾아 국경을 넘은 싱가포르 등록 차량에 판매를 금지했고 중동의 산유국들에서는 유가와 함께 폭등한 곡물가격 때문에 주민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가 고유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부국이나 빈국에 관계없이, 부자나 중산층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지난달 31일 “생활방식의 변화만으로 고유가에 대처할 수 있는 국가들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며 “그러나 고유가로 생존을 위협 받고 있는 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일 정부의 해결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7,000명의 어민들이 거리행진 도중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생선 20톤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 선박 연료인 디젤유 가격이 최근 5년 동안 300% 급등했지만 생선 가격은 몇 년째 제자리를 맴돌면서 생계 위협에 처한 어민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2주 전 프랑스에서 시작된 어민들의 시위는 현재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며 영국에서 터진 화물트럭 운전사들의 외침은 네덜란드와 불가리아에서도 들리면서 고유가에 항의하는 유럽 국가들의 시위는 당분간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에서는 소득의 10% 이상을 연료 소비에 지출하는 ‘연료 빈곤층’이 400만명에 이른다. 현재 영국의 가구당 평균 전기ㆍ난방비 지출액은 1,000파운드(약 20만원) 이상이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연금 생활자와 저소득층을 위해 2011년까지 1억5,000만파운드(약 3,000억원)의 지원금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서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 시민들도 고유가 충격을 피하기 위해 생활 방식을 바꾸고 있다. 오하이오, 뉴욕주 등 일부 주정부는 하루 8시간_주5일 근무제 대신 하루 10시간_주4일 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통근 횟수를 줄이고 자가용 대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는 주민들도 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대기공해를 감소시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낳고 있다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남미의 대표적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유가 통제정책으로 오히려 정부 재정이 악화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사탕수수 재배가 늘면서 오히려 경작지가 감소, 곡물가격 폭등에 시달리고 있다.

산유국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정부가 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자 하루 아침에 휘발유 가격이 30%나 폭등, 항의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석유 수입국인 홍콩 대만 항공사들은 일부 노선에 대한 운항을 중지하는 등 고육책 마련에 나섰다.

고유가와 곡물가격 폭등에 가장 취약한 아프리카에서도 국제 구호단체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아프리카 주민에겐 생사의 문제가 되고 있다. 에너지 자원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북극 지역은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려는 미국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사이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어민들과 화물트럭 운전사들의 시위가 잇따르자 EU차원에서 고유가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겸 재무장관은 “고유가에 대처하기 위해 정치적인 해법을 모색하자는 생각은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를 이끌고 있는 융커 총리는 감세를 통한 유가인하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EU차원의 유류세 감면을 주장했을 때도 EU 재무장관들과 집행위원회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었다.

나날이 치솟는 물가도 유로존 재무장관들을 움직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31일 유로존 15개국의 물가상승률이 5월 3.6%를 기록, 16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유로존의 소비자 물가가 이 달에도 3.7% 상승,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3분기 이후에나 꺾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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