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방 번호를 보면 ‘정치’가 보인다. 국회와 정당이 소속 의원들의 방을 배정하는 데는 선수(選數)와 나이는 물론 권력의 논리도 작용한다. 의원들은 징크스에도 무척 예민하다.
회관 428호와 444호. 이번 방 배정 때 의원들이 기피했던 방이다. 17대 국회 때 428호를 썼던 한화갑 전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홍업 전 의원이 재보선에서 당선돼 428호를 물려 받았으나 18대 공천에서 탈락,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사연 많은’ 428호는 원래 통합민주당 김진표 의원에게 배정됐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입주를 거부해 같은 당 초선 박선숙 의원이 유탄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444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16대 김낙기 의원과 17대 정종복 의원이 모두 낙선했다. 이번엔 무소속 유성엽 의원이 444호에 입주했다.
이재오 전 의원이 방을 뺀 338호도 의원들이 꺼렸다. 이재오계인 초선 김용태 의원이 338호 입주를 자청했다. 그는 “나중에 방을 내드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338호 앞 방인 337호엔 이 전 의원을 꺾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둥지를 틀었다. 이방호 전 의원이 썼던 333호는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이 물려 받았다.
회관 7층의 716~730호는 국회 앞마당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최고 명당. 방 주인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한나라당 정몽준 정두언 이혜훈 원희룡 박진 의원과 민주당 원혜영 박상천 이강래 의원,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 등이 입주, 18대 최고의 ‘로열 라인’으로 거듭났다.
반면 창문이 돌담에 가로 막혀 시야가 답답한 2층의 남쪽 라인은 한나라당 조해진 이은재 강명순 정미경 현기환 의원 등 초선들에게 돌아갔다.
친박연대 홍사덕 의원도 ‘6선’ 대우를 받지 못하고 736호 구석 방을 받았다. 무소속 박지원 의원은 ‘6ㆍ15 정상회담’을 상징하는 615호를 신청해 당첨됐다. 하지만 흡연실 바로 옆방이다.
17대에 이어 545호를 사용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방 주변엔 공교롭게도 친박계 의원들이 한 명도 입주하지 못했다. 초선인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마주보는 앞방(525호)을 노렸으나, 3선인 친이명박계 조진형 의원에게 밀렸다.
525호는 전망이 좋아 원래 3선 이상의 몫이었다고 한다.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는 박 전 대표의 방에서 약 10m 떨어진 방을 차지, ‘회관 내 최측근’이 됐다.
초선 때부터 ‘4ㆍ19 혁명’을 상징하는 419호 써 온 6선의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이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15대 국회 때 420호에 입주한 무소속 김무성 의원도 마찬가지.‘어색한 이웃’ 관계가 이어지게 된 셈이다. 껄끄러운 사이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329호)와 무소속 이인제 의원(327호)도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4년을 보내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썼던 312호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쓴 638호, 김대중 전 대통령의 328호는 대통령을 배출한 명당.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312호를, 같은 당 서상기 의원 638호를 17대 국회에 이어 계속 지키기로 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김근태 전 의원이 떠나간 328호는 자유선진당 이재선 의원에게 넘어갔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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