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 지음/실천문학사 발행ㆍ272쪽ㆍ9,800원
심윤경(36ㆍ사진)씨가 세 편의 장편에 이어 내놓은, 6, 7세기 신라사(史)를 모티프로 한 이 연작소설의 포복절도할 상상력 이면엔 진지하고 지적인 주제의식이 놓여있다.
수록작 5편을 시대순으로 배열해보면 신라가 불교를 공인했던 법흥왕(?~540) 치세기가 첫머리고, 통일신라기 불교 대중화에 혁혁한 공적을 세운 원효(617~686)의 말년이 끝머리다. 신라 토착신앙을 성(性)숭배 신앙으로 해석하는 작가는 불교의 유입을 전통-외래 문화의 충돌로 그린다. 여기에 무열왕을 전환점으로 성골에서 진골로 왕권이 옮겨지는 정치적 변동을 겹쳤다. 성골-토착신앙 대 진골-불교신앙의 대립구도 속에서 작가는 전환기의 정치ㆍ문화적 상황은 과연 어땠을까, 정교한 역사적 상상력을 펼친다.
이 연작을 쓰며 심씨가 세운 창작 원칙이 엄격하다. 그는 <삼국유사> 와 유물ㆍ유적 등 사적(史的) 권위를 인정받은 사료만을 참고 인용하고, 내용은 흥미롭지만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 는 철저히 배제했다(수록작 앞머리마다 인용된 짤막한 사서(史書) 속 문구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터뜨린 뇌관들이다). 상상력의 연원을 정사(正史)에 두겠다는 것으로, 작가가 역사를 허구를 덧칠할 시공간이 아닌 해석의 대상으로 여기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화랑세기> 삼국유사>
강조해둘 것은 작가가 정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엄격한 고증의 터 위에 펼치는 작가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유쾌하다. 동성애 관계인 화랑 영랑과 낭도 준랑은 준랑의 혼인을 앞두고 함께 수련을 떠나는데, 그들이 심산의 계곡 바위에서 연마하는 것은 ‘비보잉’이다(‘준랑의 혼인’)! ‘우연히 광대가 가지고 노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을 따라 도구를 만들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란 <삼국유사> 속 ‘원효불기’의 기록은 수록작 ‘천관사’에서 원효가 포교를 위해 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헤드스핀’을 한다는 기상천외한 설정으로 전환한다. 삼국유사>
심씨의 상상력은 에로틱하고 때론 그로테스크하다. 그는 성골 출신 역대 왕을 거구로 묘사한 구절이 많다는 점에 착안, 그들이 토착 성숭배 신앙의 주관자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줬다는 상상을 펼친다.
엄청난 대변 크기 덕에 ‘한 자 다섯 치의 양물’을 지녔다는 지증제의 비로 간택된 연제태후-신라가 칭제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연제왕비의 면면엔 ‘태후’란 칭호가 어울린다는 작가의 설명이다-가 천제(天祭)에서 왕과 벌이는 교합제는 제단을 무너뜨릴 만큼 격정적이다(‘연제태후’). 태후는 불교 공인으로 마음이 기우는 아들 법흥제를 준열히 꾸짖으며 이차돈 처형을 사주한다. 흰 젖을 쉼없이 내뿜는 죽은 이차돈의 목 앞에서 광분하는 태후의 모습은 신구 문화 충돌의 갈등을 극명히 보여준다.
성골 치세 말기 ‘만인의 연인’처럼 백성의 사랑을 받은 선덕여왕과, 진골 출신 첫 왕으로 선덕여왕을 비롯한 성골 상왕들의 카리스마에 짓눌린 무열왕을 대비시킨 ‘변신’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가는 성골 왕들에 대해선 거대한 풍채를 묘사하면서 무열왕에 대해선 대식가의 면모를 부각시킨 <삼국유사> 기록에 기괴한 상상을 보태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삼국유사>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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