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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산악인 엄홍길 산상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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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산악인 엄홍길 산상대담

입력
2008.06.0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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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12월 장애우 10명과 함께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를 등정할 때 박범신 선생이 동행했죠. 장애우 도우미로 산에 올랐던 친구 중엔 젊은이도 여럿이었는데, 선등하는 제 뒤를 바짝 좇아 정상까지 오른 분은 선생이었습니다. 해 넘으면 환갑이었던 선생이 보여준, 목표를 향한 강한 신념과 의지가 인상 깊었습니다."(엄홍길)

"엄 대장이 그 나이에 자길 뒤쫓아와서 놀랐다고 하는데 실은 제가 문단의 청년 작가입니다(웃음). <촐라체> 를 비롯, 93~96년 절필 이후 제 작품들은 소재가 무엇이든 모두 유한한 삶이라는 인간 본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생을 산에 비유하자면, 산을 얼마나 아름답게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죠. 나이 든 제게 절박한 실존적 주제이기도 합니다."(박범신)

올 3월 산악소설 <촐라체> 를 낸 소설가 박범신(62)씨와 작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48)씨가 1일 북한산 용암샘터(575m)에서 산상대담을 가졌다. 2005년 킬리만자로 등반 때 알게 된 두 사람은 작년8월 동남아시아 최고봉 키나발루(4,095m)를 함께 오르는 등 교분을 두텁게 하고 있는 산(山)친구다.

이날 행사는 독자 및 등산객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소설가 백가흠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본격문학 작가로선 드물게 산악소설을 쓴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박씨는 "삶과 죽음, 불멸의 꿈과 눈물겨운 추락, 고된 노동과 뜨거운 사랑 등 모든 존재론적 질문이 산을 오르는 일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촐라체> 는 매우 보편적인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홀로 고독하게 산길을 걷다보면 눈에 보이는 사실의 길 외에 기억의 길, 우주적 상상력의 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면서 "언젠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땐 작고한 지 30년된 어머니와 함께 걷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면서 산이 선사하는 문학적 영감을 설명했다.

현재 3만 부 가량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촐라체> 는 박씨가 중진 작가로선 처음으로 포털사이트(네이버)에 연재해 작품 외적인 화제가 됐던 소설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인터넷 아니라 인사동에 나가 책 좌판을 펼칠 용의도 있다"고 말한 박씨는 자신의 세 자녀를 보면서 이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내 아이들이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를 보면 자본주의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모럴을 잃고 내시처럼 거세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제 속의 야성을 살려야 한다. 야성이란 수단 방법 안가리고 위악적으로 사는 게 아닌, 이상을 향해 희생과 헌신을 기꺼이 감수하는 도전 정신이다."

엄씨도 "젊은 친구들과 함께 히말라야에 올라보면 기본적인 체력은 좋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뒷심과 오기가 부족한 것 같다"며 동감을 표했다.

전날(5월31일)로 16좌 완등 1주년을 맞은 엄씨는 "마지막 봉우리 로체샤르(8,400m)에서의 하산길은 설맹(雪盲)으로 앞이 안보이는 후배를 껴안고 빙벽을 타야 했던, 차라리 죽는게 낫다 싶은 고통이었다"고 회상하며 "지난달 28일 창립한 휴먼재단을 통해 히말라야 오지 지원,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 자녀 지원 등 히말라야 신이 죽음 대신 내게 부여한 임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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