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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메가바이트로 안 된다면

입력
2008.06.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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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 임박한 최대의 위험은 광우병이 아니라 물가 불안이다. 광우병은 희박한 확률에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현실화할 수 있는 미래의 위험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광우병 위험물질이 식탁에 오르지 않도록 몇 가지 안전장치만 추가하면 현저히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천정부지로 뛰는 기름값을 비롯해 수입원자재가의 급등으로 밀어닥치고 있는 물가불안은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도 대처가 쉽지 않다.

제3차 오일쇼크가 시작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덤프 트럭들이 멈춰서고 어선들은 출어를 못한다. 자영업자들은 넋을 잃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비명들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와 일반 국민들이 온통 광우병 논란에 붙잡혀 정말 두려운 위험에는 손 놓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과민반응, 그리고 선동세력의 문제라고 하겠지만 보다 큰 책임은 이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외환위기 때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국민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했다면 지금 쯤은 대다수 국민의 지원 속에 물가 불안 등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어야 정상이다.

광우병보다 더한 위험

이 대통령은 그 기회를 놓쳤다. 취임 3개월도 안 돼 20%대로 추락한 지지도가 그 결과다. 당선 직후는 ‘보수+중도’에 일부 진보세력이 가담해 80%에 가까운 지지도를 보였다. 대선 때 이회창씨의 출마로 보수진영이 분열됐음에도 낙승한 것은 중도층의 가세 덕분이었다. 그러나 인수위의 정책 혼선, 조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과정의 ‘강부자’ ‘고소영’ 논란에 이어 쇠고기수입 졸속협상까지 에러가 계속되자 하루아침에 판도가 달라졌다.

중도가 일찌감치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보수진영도 흔들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제 중ㆍ고생과도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됐고 지난 대선 때 자신의 강력한 지지세력이었던 총학 등 대학생들도 장관 고시 강행을 계기로 거리 시위에 나섰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이 대통령 자신은 소통과 홍보의 문제라고 짚었다. 인적 쇄신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견해도 분분하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국정 수행의 기본 전제가 잘못돼 있다. 인수위 활동을 통해 거창한 국정지표와 과제를 제시했지만 실제는 전 정부 정책들이 모두 잘못됐다며 180도 뒤집는 것 외에 별다른 게 없다.

파문을 부른 쇠고기 졸속협상도 전 정부에서의 한미관계가 최악의 위기였다는 전제 하에 한미동맹 복원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처음부터 지고 들어간 결과다. 남북관계도 이전 정부의 정책과 성과를 전면 부정하다 보니 경색 상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도 그렇다. 정부조직이 방만하고 비효율적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여 될 일이 아니었다. 국무조정 등 총리실 기능을 대폭 줄인 뒤 청와대가 다 알아서 할 것처럼 했으나 청와대 조직 자체도 줄인 마당에 잘 돌아갈 리 만무하다.

기본 전제부터 바꿔야

그나마 대통령 비서실은 현실감각이 떨어진 교수출신이 주류고, 행정관 등 실무진도 각 부처의 베스트로 구성된 게 아니다. 부처 장악력이 이전 정부에서보다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속수무책이었던 것도 정부조직 통폐합 과정에서 무턱대고 관련 인력을 줄인 탓이 크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 대통령이 사과담화나 발표하고 몇몇 장관과 청와대 참모 몇 명 교체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 이 대통령이 먼저 기본 전제와 발상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청와대 와 정부조직도 필요하다면 보강해야 한다. 인물도 그들만의 베스트가 아니라 모두 가운데 베스트를 선발해 써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메가바이트 용량으로 대처할 수 없다. 당연히 기가나 테라바이트로 용량을 늘리고 운영체계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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