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국산 쇠고기, 한미FTA등으로 촉발된 반정부 기류는 소재와 대상을 달리해 가며 끊임없이 반대와 시위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만사불만의 정서가 널리 퍼져 매사에 이명박 정부의 운신이 어렵게 됐다.
이런 국면에서 7월부터 시행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또 하나의 악재가 될 소지가 있다. 이미 4년 여 전 논의를 시작해 시범사업까지 거쳤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이 제도를 잘 모르고 있고, 아는 사람들은 불만이 높다. 7월부터 직장인들의 월급에서 건강보험료의 4.05%를 추가로 떼기 시작하면 불만이 터져 나올지 모른다.
노인 요양보험 잘 정착될는지
치매 중풍을 비롯한 장기요양 노인환자들을 위해 설계된 이 보험은 좋은 취지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우선 보험료 문제다. 서비스 대상자는 65세 이상 노인의 3% 남짓한 17만여 명에 불과한데,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내 돈을 더 내는 일을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 보험료는 월 평균 2,700원 내외라지만 살기가 점점 더 나빠지는데 추가 지출이 반가울 리 없다.
두 번째는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차이 문제다. 이 보험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요양병원에 있는 환자는 의료서비스를 하지 않는 요양시설로 가야 한다. 요양병원의 환자에게는 간병비를 주지 않는다. 돈도 없지만 간병비를 주면 의료서비스가 필요 없는 환자들까지 입원을 하는, 이른바 ‘사회적 입원현상’으로 인해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이 어려워지고 도덕적 해이가 번질 것이라고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복지부의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www.longtermcare.or.kr)에는 볼멘소리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은 환자는 별 혜택이 없어 이 보험을 이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불효보험’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세 번째, 요양등급 판정의 공정성도 과제다. 치매를 앓고 있거나 가족의 부양이 불가능한 상태인데도 거동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서비스 대상이 아닌 ‘등급 외’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요양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시설이 모자라는 서울지역은 대상자의 절반이 지방에 가서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정부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예로 꼽는 요양보호사는 넘쳐 난다. 요양보호사 1급의 경우 240시간, 2급은 120시간 교육만으로 학력 제한 없이 자격증을 딸 수 있자 교육기관이 난립해 경쟁적으로 수강료를 낮추고 교육시간도 줄여 주면서 자격증을 남발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를 발표해 재정부담 증가, 관대한 요양등급 판정,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 등 문제점을 지적했다. 물론 보건복지부는 조목조목 정면 반박했다. 이어 2주일 전에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공동 명의로 협조요청문을 발표, 고통 받는 분들을 서로 돕는 품격 있는 사회로 나가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수혜대상 노인들을 늘리고 시설문제를 최소화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도덕심과 온정에만 호소해서 성공할 수 있는 행정은 없다. 1977년 의료보험(현재는 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됐으니 우리의 보험도 30년이 넘었지만, 사회보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높지 않다. 게다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이런 것들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심해진 터에 이른바 ‘제 5의 사회보험’을 도입하게 됐으니 환영 받기 어렵다.
국민의 마음 사는 일에 총력을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점은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방식이 너무 안이하고 무심하다는 것이다. 이 제도 역시 전 정부가 얼개를 갖추고 새 정부는 시행이라는 설거지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살림을 잘 하는 사람은 설거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안다.
무슨 일이든 국민의 마음을 사야 하는데,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해 정부가 크게 낭패할 수 있는 일이 여기 또 하나 있다. 이 제도의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하는 처지에서, 그래서 점점 더 걱정스럽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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