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魔)의 ‘판매량 5만대, 시장점유율 5%’ 벽을 뛰어 넘은 국내 수입차 업계가 올해 ‘6(판매량 6만대)-6(점유율 6%)’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다. 이런 외형적 성장에 비해 수입차에 대한 인식은 ‘수입차=비싸게 주고 사는 차’, ‘신분 과시용’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과도한 판매가, 허술한 사후 서비스, 한국시장을 경시하는 본사의 경영방침 등 소비자 위에 군림하는 수입체 업체들의 형태 역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수입차 대중화 시대를 앞두고 풀어야 할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미국에서 금융회사를 다니다 귀국한 박준영(35)씨는 최근 서울 강남의 BMW 매장을 찾았다가 충격을 받았다. 미국에서 4만달러를 주고 샀던 BMW 335i가 2배 넘는 8만달러(8,190만원)에 팔리고 있었던 것. 박씨는 “한국에서 수입차 가격이 비싸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며 “한국 사람들이 이런 불합리한 가격을 알고 사는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계 여러 문제점의 바탕에는 한국시장에 대한 경시풍조가 깔려 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매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작 수입차 외국 본사가 보는 한국시장은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 보니 차량 가격책정에서 시설 투자, 경영진 임명 등에 이르기까지 다른 국가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 이런 차별은 결국 차량 출고가와 사후서비스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수입차 가격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최근 병행수입으로 수입차 가격 거품이 상당수 걷히고 있지만 국내 판매가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벤츠의 C클래스 모델인 C230(2,500㏄)의 미국 판매가격은 운송비 보험료 판매법인ㆍ딜러 마진까지 포함해 3만425달러(2,787만원). 하지만 국내 판매가격은 5,690만원으로 2배가 넘는다.
BMW코리아는 지난해 5월 528i 신 모델을 선보이면서 ‘한국 고객을 위해 기존 차량가보다 1,900만원을 특별히 인하한다’고 발표하며 출고가를 6,750만원으로 내렸다. 하지만 이 차는 미국에서 2,615만원이나 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생색만 냈을 뿐 받을 건 다 받은 셈이다.
수입차 업체들은 이런 고가 정책에 대해 “한국시장이 아직 미국이나 일본에 규모가 비해 작아 경비를 감안하면 대당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향후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차량가격도 낮아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부 부유층만을 상대로 한 수입차 업체들의 마케팅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주 강남에 있는 한 수입차 매장을 방문한 회사원 장모(42)씨는 석연치 않은 경험을 했다. 중2 아들의 요구에 못 이겨 매장을 찾았는데 국산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본 직원이 건성으로 응대를 하는 박대를 당했기 때문이다. 장씨는 “차를 살 사람으로 안보였는지 직원들이 설명도 제대로 안 해줘 기분만 상했다”고 말했다.
일단 팔고 보자는 식의 판매 전략 때문에 수입차 중고가격은 말이 아니다. 28일 국내 SK엔카, 보배드림 등 국내 수입차 중고차 포털사이트에 따르면 주요 수입차 가격은 1년 만에 반값 수준으로 추락한다. BMW530i의 경우 출고 1년 된 2007년식 모델이 5,600만~6,200만원으로 신차 가격(9,450만원)의 59.3% 수준이다. 아우디 A6 3.2콰트로 2007년식 모델도 신차 가격(8,560만원)의 59.6% 수준인 5,100만~5,500만원, 렉서스 LS460L도 1억300만~1억1,300만원으로 신차 가격(1억6,300만원)의 63.2%에 불과하다.
수입차 업체들의 본사도 한국시장을 한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적지 않은 수입차 업체의 경영진이 본사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한국인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는 최근 사장부터 부사장, 재무 담당 임원까지 모두 독일 본사 출신으로 교체했다. 또 GM코리아 경우 이영철 사장과 GM대우 존 그리말디 사장이 등기상 공동 대표로 돼 있지만 재무 담당은 미국 본사의 외국인이다.
대덕대학 자동차계열 채영석 겸임 교수는 “고가 수입차 구매 여부는 소비자들이 판단할 문제지만 수입차 업체들의 폭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수입차 업체들도 성장하는 한국 시장에 걸맞게 가격이나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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