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우문에 대한 현답은 초원에서는 사자가, 숲에서는 호랑이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우문을 생각한다. 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AI)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올 봄 우리 주변을 휘젓고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질병들이다. 하나는 소, 다른 하나는 닭을 주된 매개로 한다. 둘 다 우리와 가까운 가축이다.
같은 위험에 반응은 천지차이
그런데 AI는 어영부영 잊혀졌는데 광우병은 나라를 뒤흔들고 있으니, 그 무서움이 AI에 비해 과연 그만큼 차이가 있어서일까.
광우병에 대해서 국민은 이번 기회(?)에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 소해면상뇌증이나 변형 프리온단백질은 물론, CJD(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의 아류인 sCJD나 vCJD까지 배우고 있다. 바이러스가 아닌 단백질 성분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아무리 끓이거나 삶아도 없어지지 않으며, 칼이나 도마 등에 옮겨 붙어 오래 잠복한다는 것도 잘 안다. 초기 증상은 기억력 감퇴, 성격 장애, 환각ㆍ환상에서 심신의 치매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주변에서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가까이 있는 불치병’의 증세와 비슷하다. 심히 두렵지 않을 수 없다.
4월 초부터 한 달 반 동안 한반도를 휩쓸었던 AI는 어떤가. 그 공포로 예시되는 것이 1918년 겨울의 스페인 독감이다. 막 끝났던 제1차 세계대전(1914년 7월~1918년 11월)의 피해자가 800만 명 정도였는데, 이 ‘이름없는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이 2,500만~5,000만 명이었다고 한다. 다수 학자들은 그 원인을 고병원성인 AI의 H5N1바이러스로 보았다. 이번에 한반도 전역을 강타한 것 역시 H5N1바이러스로 밝혀졌으나 다행히 인체감염이 덜하고 치사율이 낮은 쪽으로 변이된 것으로 확인됐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감염되고 발병하여 사망한 숫자만 보면 AI가 훨씬 많고, 생활이나 지역ㆍ문화적 특성으로 보아도 광우병보다는 AI가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굳이 덧붙인다면 광우병은 쇠고기를 피해 다니면 관계가 없지만, AI는 닭과 오리를 보거나 먹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감염될 수 있다. AI에 걸린 닭 한 마리가 광우병에 걸린 소 한 마리보다 덜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최근 AI는 우리 주변에 와서 한동안 서성이다 스스로 물러갔고, 우리는 그것을 ‘소가 닭 보듯이’ 무심하게(?) 지나쳤다. 하지만 광우병은 달랐다.
촛불문화제로 시작된 토론의 장은 금세 촛불집회로 이어졌고, 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촛불시위대가 서울의 중심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가 아니라고 할수록 관련된 괴담은 더욱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미국에서 수입될 쇠고기는 모두가 광우병으로 죽은 소의 시체인 양 인식되고 있다.
그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한미 쇠고기 협상의 졸속 타결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의 실수(?)만으로 이렇게 될 순 없다. AI에서 확인된 ‘행정의 실패’는 견딜 수 있지만 광우병으로 집약되는 ‘정치의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행정력보다 필요한 건 정치력
현정부를 일컬어 ‘광사모(광우병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비아냥이 들리더니, 곧바로 ‘이미모’나 ‘M미모’(이명박이나 MB를 미워하는 모임)가 생겨나고 있다.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이 공기업 민영화 반대, 교육자율화 반대, 대운하 반대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부풀고 있다. 이들은 정치권의 야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전적 표현을 빌리면 ‘남파 간첩’의 조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생적 좌익 세력’이 충분한 자양분을 얻고 있다는 말이다.
미래의 불확실한 광우병이 왜 턱밑까지 닥쳤던 AI의 위협까지 덧없이 만들었는지 알아야 한다. 행정의 실패로 방역에 구멍에 뚫리고 H5N1바이러스가 주변에 어슬렁대도 견뎌낼 수 있었지만, 정치의 실패로 국민의 심기를 상하게 하는 짓은 참지 못한다는 의미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행정적인 절차 보완보다, 고차원적인 새로운 정치력이 필요한 이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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