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시인을 아주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실용주의를 자처하는 당신들 눈에는 시인은 아마 가장 비실용적인 인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무어라 해도 시인은 생태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이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이 물을 건너지 못하는 것인데 당신들은 산을 뚫어 물길을 만든다고 합니다. 산으로 간 배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강은 어머니나 같은 것입니다. 제발 우리 어머니를 그냥 두세요.’
며칠 전에 출간된 시집 <그냥 놔 두라> 에 실린 정희성 시인의 시 ‘누가 어머니의 가슴에 삽날을 들이대는가’의 첫머리다. 1970년대말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에서 민중의 아픔과 생의 긍정을 삽의 이미지로 보여줬던 그는 30년이 지나 다시 삽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냥 놔 두라> 는 정희성의 말대로 ‘가장 비실용적인 인간’인 한국의 시인 203명이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추진을 반대하며 쓴 시 한 편씩을 모은, 203인 공동시집이다. 노장, 남녀가 따로 없다. 그냥> 저문> 그냥>
시 쓰고 있어야 할 ‘아주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현실행동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시인이 결코 비현실적, 비실용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 책 서문에 다산 정약용의 글이 인용돼 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의 일을 분개하지 않는 내용이 시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고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의 시를 시라 할 수 없으리.’(不傷時憤俗非詩也, 非有美刺勸懲之義非詩也)
근래 본 적 없는 시인들의 집단행동이 심상치 않지만, 10대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은 더욱 심상찮은 조짐이다. 광우병 논란에 싸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그들을 두고, 정부나 일각에서는 ‘배후’ 운운하지만 과연 그렇게 볼 일인가. 한 정치학자는 그 10대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진짜 배후는 바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며 그것이 이념과 세대의 차이를 넘어 ‘전 국민의 운동권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100일 만에, 강부자 내각부터 시작해 영어몰입교육, 미국산 쇠고기 파문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이나 훈수야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 대통령은 지난 22일 미국산 쇠고기 파문으로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하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담화를 보면서도 이 정부가 국민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경제 논리로 보면야 대운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어느 것도 욕 먹을 일이 아닐 수 있다. ‘비실용적인’ 시인들과 10대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그 정책들이 결코 경제 살리겠다는 구호 같은 말만으로는 가릴 수 없는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선거 때는 구호에 손을 들어주었을지 몰라도 결코 경제를 삶이나 생태나 미래, 그리고 정의의 동의어로 보지 않는다. <그냥 놔 두라> 에서 실린 시 ‘곰을 위한 진혼곡’에서 젊은 시인 손택수는 그런 구호를 ‘이 힘으로 고속도로를 뚫은 우리들이 아니던가/ 온 천지에 빨대를 꼽은 우리들이 아니던가’라고 곰쓸개에 빨대를 꽂는 인간들의 ‘힘’에 비유해 조소하고 있다. 어머니 같은 국토에 빨대를 꽂는,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에 빨대를 꽂는 식의 경제를 그들은, 우리는 원치 않는 것이다. 그냥>
하종오 문화부 부장대우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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