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됐던 1997년 가을이었다. 마무리 훈련 첫날 선수단 미팅을 가졌는데 이승엽(요미우리)이 머리 중간중간에 염색을 한 ‘단풍머리’로 나타났다.
코치시절 엄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이승엽은 감독이 된 필자를 보더니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시 고졸 3년차, 21세이었던 이승엽으로서는 유행하던 머리모양을 하고 싶었던 게 당연했을 것이다.
“선수 여러분, 앞으로 1군 선수는 머리모양은 물론이고 목걸이 귀고리 코걸이를 해도 절대 눈치 보지 마세요. 운동장에서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던질 수 있다면 여러분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선수들은 처음에는 필자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승엽을 비롯한 주전들이 머리에 물을 들이거나 부착형 귀고리를 하자, 나머지도 하나 둘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싫증이 난 듯,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 선수들도 생겼다. 필자의 아들도 스물네살인데 스무살이 갓 넘을 때만 해도 머리를 기르고, 염색도 했지만 요즘은 뜸하다.
얼마 전 일부 구단이 선수들의 개성에 제동을 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체감’이라는 명분 하에 선수 소개 장내 소개코멘트 통일, 선수 테마송 폐지, 두발규제 등을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팀 성적이 나쁘다 보면 분위기 쇄신을 위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일시적으로 성적이 좋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는 개성이다. 이승엽의 단풍머리, 이재주(KIA)의 수염, 홍성흔(두산)의 노란 머리를 보기 위해 운동장을 찾는 팬들도 많다. 성적이 안 좋다고 개성을 제약하면 볼거리가 줄어든 야구장에 실망한 팬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어느덧 30년 가까이 됐다. 30세면 성년을 넘어 가장이 될 나이다. 구단도, 코칭스태프도, 선수도, 팬도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프로는 상품이다.
전 KIAㆍ삼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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