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세계화’와 ‘국제화’가 비슷하게 쓰이지만 느낌과 내용은 크게 다르다. 처음 ‘세계화’가 거론될 때만 해도 문화적, 계몽적 색채가 짙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세계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넓고 보편적인 사고를 갖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IMF 위기’ 이후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번역어로서 ‘지구화’와 함께 쓰인 ‘국제화’는 사뭇 달랐다. 이제 의식과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과 상품, 노동 등이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국경을 낮추거나 없애자는 요구가 주로 반영됐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국제화’와 그 도구인 ‘국제기준’은 적잖은 기여를 했다. 일부 대기업은 체질을 강화,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수출 증가와 해외 자본의 활발한 유입으로 외화 부족도 치유됐다.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고, 소득향상에 따라 생활수준도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일찍이 1970년대부터 비판적 경제학자들이 우울하게 전망했던 국내적 빈부 격차 또한 뚜렷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내적으로 빈부 격차를 해소할 정책수단이 거의 힘을 잃어가는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의 두드러진 소득격차는 이미 고정태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 계수는 0.31대로 ‘IMF 위기’이전의 0.28대와 아득해졌다. 또 상위 20%와 하위 20%의 평균소득 격차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이 올 1분기에 8.61에 이르러 통계가 시작된 2003년 이래 최악을 기록했다. 계층 간 소득격차는 중위 계층의 삶이 안정되고, 하위 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만 있다면 특별한 위협요인이 아니다. 그러나 국제 유가와 곡물가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물가불안이 중위 계층까지 위협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촉발된 민심의 동요가 벌써 심상찮다. 그렇다고 상위 계층에서 더 거둬 중하위 계층에 나눠주는 식의 정책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단지에 나붙은 ‘종부세 폐지’ 현수막을 보건, 국제화의 결과 상위 계층이 언제든 몸과 돈을 밖으로 옮길 수 있는 ‘다국적 개인’으로 바뀐 현실을 봐도 그렇다. 이들의 돈이 빠져나가면 중하위층의 삶은 더욱 힘겨워진다.
‘IMF 위기’ 때 뼈저리게 체득한 교훈이다. 이제는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불만도 함부로 터뜨릴 수 없게 됐다. 국가와 서민이 함께 국제화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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