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4강 외교가 꼬이고 있다.
이른바 창조적 실용외교를 내세워 성격이 판이한 주변 4대 강국과의 관계 강화 및 협력 증대를 꾀하려던 당초 계획이 각종 악재의 돌출로 퇴색하고 있다. 순방 시기 배치도 방문 효과 극대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4강 정상외교를 너무 서두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7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예정된 이 대통령의 중국 방문만 해도 그렇다. 정상회담은 양국이 공동 발표하는 게 원칙이지만 12일 중국에서 쓰촨(四川)성 대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13일 우리 측만 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생겼다. 중국은 이로부터 10일 뒤 발표했다.
한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중 시의 ‘협력 동반자 관계’,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방중 시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적대적 역사를 사실상 청산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겠다는 방침이지만 시작부터 꼬인 것이다. 중국은 경제는 물론, 정치ㆍ군사ㆍ문화 등 다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진 8개국 등 21개국과만 맺고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친미원중(親美遠中)에 대한 중국 내 우려를 털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우리 측의 대북 정책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끌어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중 정상선언에 이명박 정부의 비핵ㆍ개방ㆍ3000정책에 대한 이해나 지지가 담기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공식 지지했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도 기본적으로는 우리 측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북중 관계나 6자회담 의장국 지위를 고려해 불편부당한 입장에 서려 한다”고 말했다.
순방 시기도 미국 방문 때처럼 묘하게 잡혔다. 이 대통령의 방중 기간이 우보슝(吳伯雄) 대만 국민당 주석의 방중시기(26~31일)와 겹쳐 있어 중국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우 주석에게 쏠릴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미국 방문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방미 시기와 겹쳐 미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사실 상당한 대접을 받고 성과도 거둔 것으로 평가됐던 4월 한미정상회담은 이 기간에 있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합의 때문에 굴욕협상의 연장선상에서 평가되는 분위기다. 한미 관계 복원을 꾀했던 정상회담이 되려 반미감정만 극도로 자극한 꼴이 됐다.
또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에 합의했지만 일본 측의 독도 문제 도발 직후 이 대통령의 강경한 대일자세로 전환함에 따라 한일 관계 역시 살얼음판이다.
한러정상회담 및 러시아 방문 일정은 잡히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교체된 러시아는 날짜를 안 잡는 건지, 못 잡는 건지 우리 측의 제안에 아직 답이 없다. 일각에서는 우리 측이 노골적으로 친미로 가면서 러시아 방문 일정을 후순위로 잡자 이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는 당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재임 기간에 방문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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