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유가 폭등세에 세계 경제가 휘청대고 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 150달러를 향해 질주하고 있고, 이 덕에 미국경제 성장률은 1%포인트 이상 추락하게 됐다.
‘3차 오일쇼크’로 번진다면, 경제침체에 물가급등이 맞물리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피할 길이 없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2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하루에 4.19달러 폭등하며 배럴당 133.17달러를 기록, 단숨에 130달러 벽을 뚫었다. 120달러를 넘어선지 불과 보름 만이다. 우리나라 수입원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바이유 현물 가격 역시 3.29달러 상승하면서 123.69달러를 기록했다.
소비자들도 폭발한 기름값을 체감하게 됐다.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보통 휘발유가격이 속속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서고 있다. 서울 여의도 S주유소에선 이날 무연 보통 휘발유를 2,025원에 팔았고, 논현동 K주유소와 삼성동 O주유소의 가격판에는 2,013원이 게시됐다. 강남구 주유소 전체 평균 가격은 리터당 1,957원으로 하루새 30원이 뛰었다.
향후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올 초만해도 “달러가치 하락에 따라 투기자금이 원유시장에 몰려든 것”이 유가 급등의 주된 배경으로 설명됐지만, 이제는 구조적 수급요인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소비국의 수요증가가 미국 경제 둔화에 따른 수요감소를 압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미국이 금리인하 행진을 사실상 중단했음에도, 유가 급등세에 제동을 걸지는 못할 거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AP통신은 이날 “유가 150달러는 이른 시일 내에 돌파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고, 앞서 골드만삭스는 2010년 배럴당 200달러 시대 개막을 예고한 바 있다.
실물경제 파장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공개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4월 회의록에 따르면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유가급등 등을 이유로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1%포인트나 대폭 하향 조정했다. FRB는 미국경제가 서브프라임모기지부실에 고유가의 이중폭탄을 맞음으로써, 금년도 성장률이 잘해야 1%대 초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경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수출호조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고는 있지만,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압력은 기업의 비용증가와 소비자의 구매력저하를 야기하고 있다. 정부가 공언해 온 6% 성장은커녕 4%대 방어조차 버거워 보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유가 급등세가 당초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작성할 때 성장률, 물가 등 거시 지표 전망치를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전망치를 조정하는 것일 뿐, 고유가에 맞설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과거 오일쇼크 당시와는 달리 우리 경제가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만한 체력을 갖췄기 때문에 아직 당시 상황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우리 경제가 저성장-고물가의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 수렁에 빠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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