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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기, 기업이 나서라] <2부> ⑤ 정부, 규제완화가 끝이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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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기, 기업이 나서라] <2부> ⑤ 정부, 규제완화가 끝이 아니다 <끝>

입력
2008.05.22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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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10세대 라인에는 함께 투자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3월 삼성전자는 LCD합작사인 일본 소니로부터 뜻밖의 통보를 받았다. 충남 탕정에 LCD합작공장(S-LCD)을 세워 '세기의 밀월'로 평가 받던 삼성-소니의 협력은 이로써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

그렇다면 소니는 왜 삼성전자와의 차세대 협력을 주저했을까. 그 배경엔 일본정부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업계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전자분야에서 질주하는 한국과 삼성을 견제해야 한다는 일본업계의 목소리가 커졌고 일본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소니에 경고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4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차세대 LCD개발을 위한 '퓨처비전'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소니는 삼성과 제휴했다는 이유로 배제시킨 적도 있었다.

일본전자업계는 최근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특히 LCD분야에선 도시바 샤프 마쓰시다 등이 저마다 손을 잡는 '적과의 동침' 붐이 일고 있다. 이유는 하나, '타도 한국'이다. 그리고 이 같은 업계의 제휴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일본 정부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 정부를 보자. 하이닉스가 대만 반도체회사인 프로모스에 50나노급 양산기술을 이전함으로써 '기술유출' 논란이 빚어졌을 때, 정부가 한 일은 별로 없다. 삼성과 LG의 LCD 상호구매협력에서도 정부역할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대'의 정부역할은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 정부가 직접 뛰며 일일이 간섭하는 규제자도 곤란하지만, 그냥 모든 것을 기업에만 맡겨 두는 방관자도 곤란하다. 정부도 기업과 함께 뛰며 지도하는 '플레잉코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시장 감시자 겸 참여자

찾아보면 할 일은 널려있다. 먼저 기업들이 한껏 재주를 부릴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 LG경제연구원 김영민 상무는 "전통적인 모방ㆍ이식형에서 창조ㆍ육성형으로 성장 패턴이 바뀐 지금 단순히 연구개발(R&D) 투자만 늘려서는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정작 관건은 그 기술을 기업이 어떻게 사업화해 이익을 창출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그는 "소비자는 이제 로봇이나 미래형 자동차 자체보다 이를 통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원한다"며 "제도를 정비해 인터넷 은행, 통방융합 서비스, U헬스 서비스 등 아이디어에 기반한 융합형 사업을 지원하고 초기에는 수요가 없고 가격만 높은 태양전지, 로봇, 미래형자동차 등 첨단사업은 아예 정부가 사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술유출을 앞장서 막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벌써 미국 일본 독일 등은 기술보호 법규와 외국인투자 심사 등 2중3중의 보호장치를 두고 핵심기술 유출을 막고 있다.

기술이 새나간 뒤 뒷북만 치기보다, 인수합병 거부권리를 지닌 러시아 연방보안국이나 외국자본의 11개 전략산업 인수는 국가승인을 전제로 하는 프랑스처럼 보다 적극적인 유출방지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R&D, 기업 전유물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국가가 주도해야 할 6대 미래기술을 선정, 발표했다. 바이오제약, 핵융합, 수소에너지, 무인 군사장비 등 대부분 향후 성장가능성은 무궁무진한 사업들이지만,그렇다고 기업이 혼자 힘으로 개척해 나가기엔 벅찬 분야들이다. 때문에 초기 정부지원은 필수적이다.

임영모 수석연구원은 "불확실성이 크거나 기술개발이 초기단계인 산업은 미국처럼 정부 스스로가 수요자가 돼 시장을 형성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가령, 미국 iRobot사가 개발한 위험지역 탐색 및 폭발물 처리 로봇(팩봇ㆍPackbot)은 지금까지 미군이 4,300만달러 어치를 구입하며 시장성을 입증한 뒤, 최근 영국 독일 등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역으로 정부가 개발한 특수분야기술을 민간으로 넘겨 상용화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라리아치료제나 나노섬유 기술의 경우, 미군이 먼저 개발했으나 이후 민간이전을 통해 상업화된 좋은 사례다.

R&D의 필수요소인 첨단 고급두뇌 확보를 위해선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대학의 잠재역량과 상관없이 대다수 대학이 구색 갖추기 차원의 이공계 대학원을 두기보다 '선택과 집중'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2006년 이공계 대학중 연구중심 대학은 전체의 7%에 불과했지만 이 곳에서 관련 박사의 80%를 배출했다.

작은 정부와 규제완화

규제는 풀어야 하고, 정부는 작아져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규제철폐, 획일적 작은 정부론은 경계해야 한다. 없애야 할 불량규제가 있는 반면, 강화해야 할 건전규제도 있다. 정부 사이즈는 작아져야 하겠지만, 특정 취약분야에 대해선 오히려 '큰 정부'도 필요하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이사회 의장은 "새 정부의 규제철폐 정책기조는 찬성하지만 철저한 감시기능이 수반되지 않는 규제철폐는 우리 경제환경을 무법천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꼭 알아줬으면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감시기능은 사회 인프라처럼 드러나지는 않지만 경제 생태계가 대기업 중심의 무차별적인 약육강식의 환경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원 수석연구원은 "지난 25년간 수많은 규제개혁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체감도를 높이는데 실패한 이유는 규제가 초래하는 비용보다 건수에만 집착했던 일괄적 접근방식 때문"이라며 "규제체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日정부 '모노즈쿠리 전략'으로 기술강국 기반

'모노즈쿠리'를 살려라.

세계가 인정하는 초(超) 장수기업의 천국, 일본에는 모노즈쿠리(物作) 정신이 사회 곳곳에 흐른다. 우리말로 하자면 '장인정신이 깃든 물건 만들기'를 의미하는 이 풍토가 바로 오늘날 세계적인 기술대국, 일본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화의 거센 물결은 장수기업의 모노즈쿠리 정신을 차츰 위협하고 있다. 소중하지만 현대에는 맞지 않는 고유기술이 사장되거나 후계자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장수기업들을 구해낸 것은 바로 일본 정부였다.

일본 정부는 먼저 기업들이 한눈 팔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경기변화나 이런저런 붐에 휩쓸려 본업을 소홀히 하는 순간, 고유기술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2005년 정부는 모노즈쿠리 국가비전전략과 함께, 신산업 창조전략과 일본 21세기 비전 등을 잇따라 제시했다. 모두 제조업의 향후 수십년간 발전계획을 담은 장기비전으로 웬만해선 뒤바뀌지 않는 정부의 좌표를 기업에 내보인 것이다.

2006년에는 '중소기업 모노즈쿠리 기반기술 고도화에 관련 법률'까지 제정, 19개 특정 기반기술에 자금을 지원했다. 2001년부터 기술인력 전문 교육기관으로 설립한 모노즈쿠리 대학 및 대학원에서는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기업들의 참여 속에 수업의 70%가 실습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핵심산업은 기업뿐 아니라 대학과 정부까지 가세해 육성한다. 대표적인 것이 산ㆍ학ㆍ관(産學官) 클러스트. 98년 설립된 일본 최대의 '타마 클러스트'(도쿄를 중심으로 한 전자부품단지)에는 300여 기업과 25개 대학 및 22개 행정기관이 연계해 연간 24조엔의 경제창출효과를 거두고 있다. 전국에 42개나 되는 장수기업 상점거리 역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배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은 기업을 잇기 위한 적격자라면 친자식을 버리고 양자를 택할 정도로 기업승계를 중시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베이비 붐 세대의 정년퇴직과 경영진의 고령화로 승계를 포기하는 기업이 늘자 정부가 '상속 도우미'로 나섰다.

상속세법을 개정, 후계자 1명에게 모든 주식을 상속할 수 있도록 했고 비상장기업 상속주식 세금도 상속세의 20%만 내고 5년동안 사업을 지속하면 나머지 80%(이전까지는 10%)를 감면해 주는 제도가 올 10월부터 시행된다. 전국 9개 지역에 사업승계 전문인력까지 배치해 기업들을 돕고 있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사업승계를 위한 펀드까지 설립해 후계자를 찾지 못하거나 자금부족으로 주식을 매입하지 못하는 경우 펀드에서 일시적으로 주식을 사주고 있을 정도다. 이 역시 정부의 지원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행 조사국 정후식 부국장은 "장수기업은 고용과 수익성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는 만큼 우리 정부도 고유기술을 지닌 기업을 장기육성하는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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