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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파리의 노트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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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파리의 노트르담

입력
2008.05.22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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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 민음사

1885년 5월 22일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83세로 사망했다. 국장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서는 ‘파리의 온 시민이 팡테옹까지 관의 뒤를 따랐다’고 전해진다. 미라보가 묻힌 것을 최초로 혁명가들이 주로 매장됐던 프랑스 위인들의 묘지 팡테옹, 위고가 안장되면서 비로소 문인들이 그곳에 묻히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팡테옹에 안치된 문인은 6명. 볼테르, 루소, 위고, 에밀 졸라, 앙드레 말로, 그리고 2002년 논란 끝에 이장된 알렉상드르 뒤마이다. 어쨌든 그만큼 위고에 대한 프랑스의 사랑은 컸다.

위고는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맹주였다. “낭만주의란 문학에 있어서의 자유주의이다”는 그의 명쾌한 선언 아래 수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19세기 전반에 걸치는 장수를 누렸던 그는 프랑스혁명과 왕정복고, 8월혁명과 2월혁명, 공화정과 제정을 모두 목격하면서 자유와 정의의 혁명정신을 자신의 수많은 시와 희곡, 소설에 담았으며 직접 현실정치에도 몸을 담갔다.

1843년 왕당파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들어갔다가 점차 철저한 공화주의자가 된 그는 1851년 스스로 나폴레옹3세를 칭하며 황제에 오른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항거하다 국외로 추방당했다. 그때부터 1870년 보불전쟁 패배로 나폴레옹3세가 몰락하고 제정이 붕괴돼 파리로 돌아오기까지 19년간, 위고는 영국과 벨기에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가 60세에 쓴 대작 <레 미제라블> (1862)은 망명기의 작품이다.

지난해말부터 한국에서는 그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1831)을 뮤지컬로 만든 ‘노트르담 드 파리’ 세번째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역시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레 미제라블’과 함께 프랑스 뮤지컬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작품이라고 한다. 빼어난 원작의 힘, 도도한 강물 같은 위고 문학의 힘일 것이다. 새 번역의 <파리의 노트르담> 은 우리에게 흔히 ‘노트르담의 꼽추’로 알려졌던 기존 번역들에서 누락된 부분을 살리고 상세한 각주도 달고 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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