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직무유기로 새 정부 출범 후 두 달이 넘도록 위원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아 표류하던 1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15일 공식 출범해 기대가 크다.
2월 말 옛 방송위원회의 업무가 종료된 이후 방송영역은 사실상 규제 공백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결과 가장 먼저 이상 징후가 나타난 곳은 케이블TV의 영역이었다. 선정적인 방송사 자체 제작물들이 경쟁적으로 편성되면서 케이블TV의 전체적인 프로그램 지형이 순식간에 황폐화된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뒤늦게 방송사 자율규제와 자정노력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방통심의위의 심의업무가 제 자리를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처리해야 할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는 옛 방송위원회의 심의기능과 옛 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기능을 합쳐 방송, 통신, 뉴미디어 분야의 콘텐츠에 대한 사후 심의를 하는 독립적 민간기구다. 따라서 두 기구로부터 넘겨 받은 심의기능이 중복되거나 충돌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은 물론 미디어 컨버전스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종합적 심의모델을 개발해야 하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의 관계 설정 등 조직의 정체성도 속히 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명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방통심의위의 위상 정립을 강조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새로운 심의원칙이나 방향 설정과 같은 실무적 차원의 이슈들보다는, 명실상부한 민간기구로서 정치적 독립성을 얼마나 확보해 내느냐가 방통심의위의 위상 정립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여당이 9명의 심의위원 중 6명을 임명하는 현 구조에서는 정치적 독립성은 기대할 수 없다는 회의적 시각이 팽배하지만, 분명한 것은 방통심의위는 대통령 직속의 방통위와는 달리 독립된 민간기구라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방통위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징표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가 방통위의 보도자료를 사전 검열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방통위로부터 일일보고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최시중 위원장이 국회 출석을 거부하는가 하면, 국무회의에 참석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언론홍보가 미흡했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의무를 저버리는 등 월권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옛 방송위가 독립기구로 존재하던 시절에는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통령 직속기구화하면서 나날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어가고 있는 방통위와는 분명한 거리를 두면서 방통심의위는 민간 독립기구라는 정체성을 철저히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은 결국 위원장을 비롯한 심의위원 개인들의 이성적인 판단과 의지에 달려 있다. 옛 방송위 시절에도 위원 선임방식은 철저히 여야 간 나눠먹기 식이었으며, 방송위의 주요 정책결정이 거대 방송사업자의 저항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새로 출범한 방통심의위가 비록 제도적 한계로 인해 규제만 할 수 있을 뿐 강력한 제재권한이 없다 하더라도, 방통위와는 분명하게 차별화되는 올곧은 행보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방송통신정책의 집행이나 지원뿐 아니라, 심의 영역에서도 정파적 이해관계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이른 시일 내에 방송의 편파성 시비를 없앨 원칙을 마련하겠다는 방통심의위가 어떻게 ‘보수신문’ 대 ‘진보방송’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모든 미디어 관련정책을 재단하는 구태를 벗어나 정치적 중립을 견지해 나가는지 지켜볼 것이다.
김영찬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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