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다음 달부터 50만톤의 식량을 12개월에 걸쳐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핵문제 진전과 함께 북미 간 화해분위기가 급속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북한도 “두 나라 사이의 이해와 신뢰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사의 표시와 함께 곧 식량이 도착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12시간 만에 신속하게 알렸다. 북한의 태도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만이 아니라 절박한 식량사정이 그대로 배어 있다.
미의 북 지원에 난처해진 정부
참으로 반가운 소식임에도 환영만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고민일 것이다. 꼬일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동시에 놓치고 본격적인 대북정책을 추진도 하기 전에 너무 빨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시험대에 올려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차적 요인은 북한 식량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갈피를 잡지 못한 데 있다. 외교통상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조건 없는 지원방침을 내비치면서 미국의 식량 지원을 환영하며 북한 식량난 해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으나 다음날 통일부는 “긴급 지원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정부 판단이며, 지원 요청이 있어야 지원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북정책의 주무 부처인 통일부의 상황인식이 무엇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런 입장이 정부의 식량 지원이 실기(失機)했기에 고육지책으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묘수’라고 생각한다면, 정부가 내세우는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도 아닐 뿐더러 남북관계를 더 꼬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자충수가 될 뿐이다.
정부는 ‘지원요청 없이는 먼저 인도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발목만 묶는 원칙에서 벗어나 미국의 식량 지원과 북미관계 개선을 남북관계 복원과 발전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식량난의 실제를 인정하고 신속하게 지원해야 한다. 대규모 지원은 당국 간 협의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적어도 춘궁기를 버틸 수 있는 5만톤 정도의 식량은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서도록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남쪽과 대립각을 세우는 ‘유일한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정권에서 이루어진 6ㆍ15공동선언과 10ㆍ4 정상회담 합의를 부정하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출범 후 공식적인 대화를 제의한 바가 없다. 대화를 거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짐작일 뿐이다. 문제는 정부가 6ㆍ15선언과 10ㆍ4합의사항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데 있다.
남북간 대화는 우리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 우선은 2007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남북 총리회담에서 합의한 2008년 상반기 제2차 총리회담 개최를 제의해야 하며, 이 자리에서 기존 남북간 합의사항에 대한 수정과 보완내용을 조정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대화 이끌어가야
북한당국도 남북관계의 복원과 발전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지원을 요청 받지도 않았는데 먼저 지원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올해 공동신년사설에 제시한 ‘앞으로 5년간 경제와 인민생활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는 대망론을 현실화하려면 5년간 얼굴을 맞대야 할 남한당국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실익 없는 명분으로 남북관계를 후퇴시켜서는 안 되듯, 북한당국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 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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