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외채와 경상수지 적자는 10여년 전 환란을 초래한 주범이었다. ‘경상 적자 확대 → 단기 외채 급증 → 외환보유고 바닥’의 수순이었다.
다시 단기 외채와 경상수지에 비상등이 커졌다. 대외 채권보다 빚이 더 많은 순(純)채무국 전락을 앞두고 있고, 경상수지는 10년 흑자 행진 마감이 확실시된다. 경제팀 수장 격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현장에서 환란을 몸소 체험한 터. 대외 불균형(경상 적자 확대, 대외 채무 증가)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대 포장하는 것도 부작용이 만만찮다. 당장 시장 일각에서는 정부가 위기를 조장하며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 올리려 한다고 비판한다. 환란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분명 같은 듯 다르다.
환란 이전 우리나라는 대외 빚이 채권보다 많은 만성 순채무국이었다. 과잉 설비투자, 환율 불안, 반도체 가격 급락 등으로 경상수지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면서 대외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에 따라 순대외채무(대외채무-대외채권)는 183억달러(94년) →254억달러(95년) →462억달러(96년) →681억달러(97년) 등 매년 확대됐다. 무엇보다 일시적으로 빠져나갈 위험이 많은 단기 외채(1년 이하) 비중이 과도한 것이 화근이었다. 96년말에는 전체 외채 중 단기 외채 비중이 절반에 육박(48.2%)했다. 이를 감당하기엔 실탄(외환보유액)이 턱 없이 부족했다.
최근 외채 증가 속도는 ‘환란 악몽’을 떠올릴 만하다. 2005년말 1,879억달러에서 지난해 말 현재 3,807억달러로 2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단기 외채 비중도 40%를 넘어서며, 환란 당시와 맞먹는다. 외환보유액이 2,600억달러를 넘어서며 환란 당시의 10배로 불어났다지만, 단기 외채가 외환보유액의 60.5%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수준(60%)을 이탈했다. 외채 증가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 우려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압박도 커지고 있다. 올 들어 3월말까지 누적 적자는 52억달러.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며 적자 규모도 연간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폄하하는 것만큼이나 증폭시키는 것도 문제다. 한두 해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순채무국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당장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단기 외채의 성격 자체가 판이하다. 환란 이전에는 종금사 등 국내 금융사들이 단기 외채를 끌어와 장기로 대출하면서 ‘미스매치(기간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 주 원인이었다.
반면, 지금은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 외국은행들의 내외금리 차를 노린 본ㆍ지점 거래 등 파생 거래 증가가 단기외채 급증의 배경이다. 경상 적자도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외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고, 수출은 여전히 호조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환란 당시와 지금은 경제 체질 자체가 판이하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과도한 대응을 할 경우 오히려 투기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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