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업 시간에 한 중국 학생이 갑자기 울면서 말했다. “선생님 진실을 알려 주세요.” 어안이 벙벙한 필자에게 그녀는 티베트 사태에 대한 사실을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인터넷과 여기서 들은 내용 중 티베트에 동정적인 논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머리가 멍해 왔다. 갖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어지럽게 떠올랐다. 한 두 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것인가. 도대체 이해가 될 수 있는 성질의 내용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무엇부터 얘기해야 하나. 그래서 물어보았다. 동북공정을 아느냐고. 들어본 일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중국의 교육제도와 사회체제는 일찌감치 유아원(중국에는 유치원이라는 용어가 없다)에서부터 중국 인민으로서의 사회생활이 몸에 배게 한다. 초등학교(소학교) 가기 전까지 유아원을 다닌다. 부모가 모두 맞벌이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맞벌이가 아니고서는 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월급을 적게 주고 남녀 모두를 일터로 내모는 사회주의 체제 시대의 제로 실업률의 유산인지도 모른다.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교과과정에도 '덕육'(德育)과 '사상정치'라는 과목이 있다. 필수다. '사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상이 아니고, '정치' 또한 보편적 개념과는 거리가 먼 중국 특유의 관념이다. 즉, 과거 개혁ㆍ개방 이전 시기의 공산주의 사상과 개혁ㆍ개방 이후의 중국 공산당과의 일체감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중국 사회에서 강조되는 정치 캐치프레이즈인 '애국주의'나 '민족 문화 전통의 계승'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이데올로기 형식의 차이일 뿐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나 과거사에 대한 왜곡에 신경 쓴 나머지 중국에서 체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던 역사 관련 '재해석'에 대해서는 다소 무관심했던 것이 아닐까. 거기서는 정부가 나서서 일(공정ㆍ工程, 인문사회 프로젝트)을 하니 일반은 잘 모르고, 우리는 민간 차원에서 주로 일을 하고 정부는 나서지 않고 있으니 그런 것일까.
일찍이 중국이 삼국(三國) 등 한민족 국가를 침략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궁궐에서 역사서를 찾아 불태우는 것이었다는 고사(故事)가 사실(史實)인지 아닌지가 중국 역사를 언급할 때 자주 화제가 되는 부분이다. 중국은 유독 '역사 정통주의'를 강조하고 역사 사실의 정통성을 체제 정통성과 합법성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삼는 역사의식의 민족이었다.
수업 시간에 울었던 그 여학생은 서울에 올라갈 거라고 했다. 가서 '성화 봉송'을 호위할 거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몇 년 전 역시 필자의 수업을 수강했던 한 중국 대학원생의 말이 생각났다. 중국은 독재국가(정확한 그들 표현으로 인민 전정ㆍ專政, 이를 번역하면 독재가 비교적 이에 근접한 개념이다)와 유사한 독대(獨大)한 공산당이 영도하는 국가라고 소개했을 때 항의하듯 말했다. 중국은 독재 국가가 아니라고.
어떻게 이렇게 한, 중 양국의 너무도 상이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ㆍ중 양국 젊은이들의 인식을 좁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앞으로 양국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아득한 간격의 근원지가 역사만을 숭상하는 '허위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수업 시간 내내 각종 '망상'이 끊이지 않았다.
이상옥 전주대 중국어 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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