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 공모제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마다 제시하는 원칙과 기준이 제각각이다. 범 정부 차원의 조율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공모 참여를 저울질하던 인사들은 정부 원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자칫 들러리만 서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극도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가뜩이나 극심한 인물난에 원칙 혼선까지 겹치면서 공모제의 실효성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공공기관장 선임 기준과 관련, “관료들에 대한 프리미엄도 페널티도 없다”며 “능력에 따라 인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관료 배제 원칙’은 적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말 이 같은 원칙을 세워놓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립 서비스’에 불과한 것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 공공 정책을 주도하는 기획재정부의 배국환 2차관은 지난 6일 공모제 활성화 기관 90곳을 지정하면서, “이들 공공기관장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공모제를 통해서 민간 출신을 우선 선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윤호 장관 얘기와는 달리 민간에 프리미엄을 준다는 뉘앙스였다.
물론 재정부 내에서도 당국자마다 발언이 엇갈린다. 한 당국자는 “관료를 무조건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했고, 다른 고위 인사는 “청와대에서 민간 우선 선임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고 했다.
기관장 재선임이나 현직 기관장 공모 참여에 대한 기준도 부처마다 엇갈린다. 금융위원회는 일괄 사표를 제출한 금융 공기업 기관장에 대해 ‘재임 1년 이하’를 재신임 기준으로 삼았지만, 지식경제부는 재임 기간을 가리지 않고 전원 사표를 수리했다. 더구나 지경부만 유일하게 현직 기관장이 공모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공공기관장 공모에 관심을 보여온 인사들은 “도대체 원칙이 뭐냐”며 몹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한 전직 관료는 “당국자마다 제시하는 원칙이 다른 상황에서 누구 하나 정확히 답변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며 “자칫 물정 모르고 공모에 응했다가 망신만 당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번에 사표가 수리된 한 현직 공공기관장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다시 공모에 참여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부처간에 형평성은 맞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범 정부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공모제 원칙 혼선은 가뜩이나 극심한 인물난을 더욱 부추기는 양상이다. 동시에 수십 곳의 공공기관이 공모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갈팡질팡하는 원칙 때문에 유능한 인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금융계 고위 인사는 “실질적인 공모제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일관된 인선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며 “결국 새 정부의 공헌도가 높은 인물들을 선임하기 위해 둘러대기에 급급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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