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진토닉 하나 줘.”
오후 1시의 인터뷰에 신구(72)는 술을 주문했다. 사진기자가 곁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묻는 말에 돌아오는 답도 태반은 “몰라” 아니면 “없어”였다. 호미로 잡초 솎듯 짧은 부정(否定)으로 질문을 쳐 내는 태도에 허방지방 말이 꼬였다. 종심소욕(從心所慾)이 허물 되지 않는 노배우가 이토록 까칠할 수 있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퍽 매력적이었다.
“그래? 작은 눈이 무섭고 말고 할 게 뭐 있다고….”
얼음잔에 담긴 술이 반쯤 비워진 뒤에야 신구의 말은 문장을 갖췄다. 톡 쏘는 차가운 눈빛의 냉기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고 하자 그의 말이 늘어졌다.
“젊을 때 악역을 많이 했었지. 쌍꺼풀 없는 눈이 밑으로 처지고 그래서 매섭게 보는 사람이 많았어. 그런데 시트콤에 몇 번 나와서 그런지,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놀자고 뎀벼들어. 하하. 확실히 젊을 때보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는 것 같아.”
그가 <방울토마토> 에서 연기 생활 45년 만의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철거촌에서 폐지를 주우며 어린 손녀를 데리고 사는 할아버지 역이다. 메마른 표정과 거친 말투 깊숙이 한 줄기 정을 감춘 캐릭터. 그러나 신구의 연기에는 어떤 작위(作爲)도 느껴지지 않는다. 표정을 한껏 구기며 굵은 가시가 돋힌 연기를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욕심 하나 없다. 방울토마토>
“그렇게 봐 준다면 고마운 일이지. 젊었을 때는 내가 가진 에너지, 힘만 가지고 연기를 하려던 경향이 있었는데…. 힘을 빼고도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원숙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근데 난 아직 잘 몰라.”
반백년에 가까운 연기 인생. 한두 번은 다른 길에 발을 담가도 흠 되지 않을 세월이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외길을 걸었다. “아직 후회한 적 없어. 내 성격과는 잘 맞는 일이야, 연기가. 근데 앞으로는 모르지. 이게 퇴직금이 없더라고. 하하.” 동년배 배우 몇몇의 이름을 대며 혹 정치권의 유혹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잠깐 뜸을 들인 뒤 남은 술을 들이켰다. “내가 원체 주변머리가 없어.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평생 하나 갖고 매달려도 성공할까말까 한데….”
영화도 TV도 잘 안 보고 “그저 저녁 반주로 술 한 잔 하는 재미로 산다”는 그에게도 딱 하나 강박감이 있었다. 40여년 전 연기를 시작한 연극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1년에 한 편이라도 연극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 근데 결단을 못 내리고 조급증만 안고 살지.” 신구라는 예명도 스승인 동랑 유치진(1905~1974)이 붙여준 것이라고 소개했다.(그의 본명은 신순기다)
반 세기 동안 계속해 온 연기란 도대체 무어냐고, 하릴없는 우문을 마지막 말로 건넸다. 신구는 딱 한 마디로 대답을 끊었다. “삶이지 뭐.” 부연을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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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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