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우익 언론인 산케이(産經)신문의 이달 초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 방일 결산 기사 제목은 ‘후 주석의 힘겨운 여행’이었다. ‘따뜻한 봄날의 여행(暖春之旅ㆍ난춘지려)’이라며 양국 관계 개선을 바랐던 후 주석을 보는 시선은 오로지 비판 일색이었다.
■ 일 언론, 중국비판에서 연민으로
중국산 냉동만두 등 일본 국민이 중국을 불신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바뀐 게 하나도 없다,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은 진전이 보이지 않고, 티베트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쓴 소리만 듣고 갔다는 끝에 이 신문은 “다수의 일본인이 지금 중국에 큰 불만을 품고 있는 것과 입에 발린 말만으로는 중일 우호의 미래를 열 수 없다는 것을 후 주석은 깨달았음에 틀림없다”고 멋대로 결론 내렸다.
일본에서 중국에 대한 이런 시선은 일부 극우 언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뉴스를 최대한 자극적으로 방송하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일본 민영방송 4개 채널 역시 후 주석의 방일을 보는 시선이 시종일관 곱지 않았다. 후쿠다(福田) 총리가 얻어낸 게 판다 2마리 빌려오는 것 말고 뭐가 있느냐는 식이다. 후 주석이 가는 곳마다 등장한 티베트 항의 시위대는 이런 방송에게 고마운 조연이었다.
불편한 대중국 감정을 유감 없이 드러냈던 일본 언론들이 후 주석이 일본을 떠나고 채 이틀이 지나기 전에 돌변했다. 쓰촨(四川)성 대지진 때문이다. 남의 나라 우환(憂患)에서까지 비난 거리를 찾으려 드는 언론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 수준을 넘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중국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연대감이 묻어나는 보도를 끝도 없이 쏟아내고 있다.
주요 신문들은 12일 지진 발생 이후 일주일 내내 1면 톱 기사와 사회면 톱 기사가 중국 지진 속보였다. 방송도 전체 뉴스 시간의 거의 절반이 중국 지진 현장 중계다. 지진 현장에 구조대 파견을 제일 먼저 타진한 나라도 일본이고,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것도 일본이다. 18일자 산케이 신문이 1면에 쓴 사진은 중국 쓰촨성 칭촨(靑川)현 병원에서 일본 국제긴급원조대가 모녀의 시신을 수습한 뒤 좌우로 도열해 묵념하는 장면이었다.
일본은 자타가 인정하는 ‘지진대국’이기에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이웃에 유별나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도쿄소방청 인명구조대는 콜롬비아, 터키, 알제리, 몽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최근 10년 동안 세계 각국의 대지진 현장을 안 다닌 곳이 없다.
■ 재난을 진정한 중일 화해 계기로
계기야 어쨌든 일본은 중국 대지진의 현장에서 또 다른 중국을 보고 있지 않을까. 살충제가 들어 있는 만두를 팔아 놓고 발뺌만 하는 나라, 소수 민족의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 국가만이 아니라 한신(阪神)대지진에서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가공할 자연의 위력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나라, 부모와 자식을 잃고 가슴 찢어지기는 마찬가지인 중국인을 새삼 발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99년 터키 지진을 계기로 그리스와 터키가 화해하고 2004년 인도네시아 대지진 이후 아체주 독립분쟁 화해의 실마리가 열린 것처럼 쓰촨성 지진의 폐허 위에서 중국과 일본, 나아가 동북아 평화와 협력의 새싹이 돋아날 것을 기대해 본다.
김범수 도쿄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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