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를 심지 삼아 대칭형으로 뻗어나가는 거대한 사슴뿔, 얼룩말 패턴의 표면 위로 돌기처럼 튀어나온 근육조직, 인간 자화상의 실루엣을 한 채 스폰지 위에 무수히 꽂힌 굵직한 모형 소시지들, 수정란 같은 연회색 볼들이 기둥처럼 늘어선 밑으로 가련하게 엎드려 있는 8주도 안 된 태아의 해골….
엽기와 세련미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작품들이 보는 이의 마음 속에 수다한 물음표를 띄운다. 생물학적 상상력으로 자연과 과학, 동양과 서양, 물질과 철학을 결합하는 마이클 주(42)의 작품들이다.
2006년 광주비엔날레 대상 수상작가인 마이클 주의 회화, 조각, 비디오 작품 15점을 선보이는 개인전이 15일부터 서울 화동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큰 호평을 받았던 로댕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2년 만의 국내전시. 이민 2세대 한국계 미국작가인 그는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비롯해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 화이트 큐브 갤러리,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가지며 국제적으로 화려하게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을 통합하는 ‘하이브리드’(hybridㆍ잡종)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준다. “나는 인공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의 혼합, 그 두 세계의 균형을 찾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개량선반’(Improved Rack)은 진짜 사슴뿔을 파편으로 분절해 쇠파이프로 연결한 작품이에요. 뿔은 뇌에서 가장 가까운 부분에서 자라는 신체기관으로 자연의 완벽한 대칭을 구사하며 자랍니다. 그 뿔을 잘라 쇠파이프로 늘림으로써 잠재적인 성장을 암시하는 식이죠.”
평면과 조각이 한 화면 안에서 동거하는 그의 작업 형식 역시 하이브리드다. 얼룩말의 유기체적 패턴(평면) 위에 의학모형 같은 피와 살과 힘줄의 신체 내부(조각)가 돌출돼 있는 ‘얼룩말 모양의 커다란 줄무늬 패널’(Large Stripe Panel With Zebra)은 “미적인 완전함과 상처받기 쉬운 불완전함, 이 두 세계를 통합한 것”이다. 남성적 상징물인 소시지를 텅빈 공허의 형상으로 빚은 작품(‘Sausage Burst’) 역시 마찬가지.
마이클 주의 작품에서 경계 지우기는 중요한 테마다. 내부와 외부가 전치됨으로써 내부는 외부화되고, 외부는 내부화된다. 내장은 소시지가 되고, 뿔은 경계를 뚫고 외부로 자라난다. 경계란 없다.
얼룩말과 사슴뿔이라는 소재 탓인지 그의 이번 작품들에선 야생과 남성성의 향취가 강하게 느껴진다. 미국 중서부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난 언제나 자연을 즐겨왔다”며 “한없이 목가적이고 로맨틱하면서도 돌아서면 인간을 죽일 듯한 자연의 상반된 이미지는 언제나 가능성이 열려있는 주제”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도 출신인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과학자로 일하면서 문화와 예술과 생활이 한 덩어리로 뒤엉켜 분출하는 유럽문화에 충격”을 받고 진로를 수정, 뒤늦게 예일대 대학원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고민은 그의 초기작들에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주제에 밀착해있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정체성이란 건 세대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다르다.
지금은 누구나 정체성을 찾고 있다. 나 말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방황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더 이상 내 주제가 아니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6월20일까지. (02)734-9467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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