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에 식량 50만 톤을 지원한다. 미 국제개발처는 17일 북한과 식량분배 감시조건의 개선에 합의, 다음달 지원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90년 대 중반 이래 최악이라는 북한의 식량난과 대기근 우려를 덜게 됐다. 그러나 우리도 유엔이 국제사회의 동참을 호소한 대북 식량지원을 서두를 필요성이 커졌다. 광우병 논란 등으로 소홀히 여긴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16일 클라크 호주 총리를 만나 “대북 인도적 지원은 핵 문제와 관계없이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미룬 식량 지원을 곧 결정할 뜻을 밝힌 것이다. 이른바 ‘인도적 상호주의’에 얽매여 북한의 대화 제의나 지원 요청을 굳이 조건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을 만하다.
그러나 새삼 지원 명분을 거론하며 정책의 일관성과 여론에 신경 쓰는 모습은 앞뒤 사정이 어찌 됐든 옹색하다. 북한을 망나니라고 욕하던 미국조차 지원을 서두르는 판국에 “먼저 고개 숙이면 도와주겠다”는 자세를 선뜻 바꾸지 않는 것은 신중하기보다 우유부단하게 비치기 십상이다. 북한이 주제넘게 뻣뻣한 것에 더러 ‘통미봉남’(通美封南) 술책을 경계하지만 북한을 터무니없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곤궁할수록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일은 흔하다. 북한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의 절박한 사정은 언론매체가 미국의 식량지원을 신속하게 보도한 데서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유독 남쪽에 ‘6ㆍ15 선언 이행’을 앞세워 지원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수굿하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걸 꺾겠다고 인도적 지원을 마냥 미뤄 얻을 건 별로 없다.
북한이 “주면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이쯤에서 동포의 너그러움을 보여야 한다. 그게 오히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되고, 국제사회에 떳떳한 면모를 보이는 길이다. 중국 지진참사 구호에 대만이 누구보다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 지혜를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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