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하순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대통령 특사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다. 하지만 최종 순간까지 최대 이벤트였던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 과제는 부시 대통령의 ‘깜짝 쇼’로 풀렸다. 정 의원이 백악관에서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고 있을 때 우연히 그 방에 들러 한국의 특사를 만난 것처럼 예우한 것이다.
이 같은 극적 효과를 배경으로 두 사람은 20분간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일정, 한미동맹의 중요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비준 등 양국의 공동관심사를 논의했다고 당시 언론은 전했다.
▦ 여기까지는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얼마 안돼 흥미로운 얘기가 흘러나왔다. 부시 대통령이 정 의원과의 대화 중에 “이 대통령이 나에게 골프를 치라고 자꾸 권유하는데, 그 말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뜬금없고 전후 맥락도 불분명한 이 소문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대통령이 당선 이후 부시 대통령과 몇 번 전화하면서 건강을 잘 챙기라는 의미로 골프를 권유했던 모양인데, 본인으로선 이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는 추측이 전부였다. 상황에 걸맞지 않은 발언의 뜻은 지금껏 수수께끼였다.
▦ 그 해답을 엊그제 부시 대통령이 인터넷포털 야후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내놓았다. “5년 전 테러범들이 나를 골프장에서 끌어냈고, 그날 이후 골프가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2003년 8월 텍사스 중부 어디선가 골프를 치던 중 바그다드 주재 유엔사무소를 겨냥한 폭탄테러로 유엔특사 등 22명이 숨졌다는 보고를 받고 골프채를 손에서 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라크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최고사령관(대통령)이 골프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숨진 미군 장병의 가족들과 늘 함께 해야 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이 대통령이 골프얘기를 자주 꺼내니 부시 대통령으로선 무척 곤혹스러웠던 것 같다. 골프를 즐기지 않는 이 대통령의 권유가 ‘선의’에서 비롯된 것임은 그도 잘 알았을 터이다. 뒤늦게나마 두 정상 간의 ‘골프 해프닝’ 전말이 밝혀졌으니 다행이다.
또 전쟁과 경제침체 등 실정으로 크게 비판받는 부시이지만, 국가지도자로서의 도덕적 신의와 윤리적 책임을 잃지 않은 자기절제는 인상적이다. 우리가 아는 사회지도층은 국가적 재난으로 모두가 고통받을 때도 태연히 골프치고 외유다니면서 변명에만 급급하니 말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