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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라우셴버그,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의 교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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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라우셴버그,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의 교두보

입력
2008.05.1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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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거한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는 추상표현주의에서 팝아트로 전개되는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교두보 역할을 맡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최전성기는 1951년부터 1964년까지. 아무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는 <백색 페인팅> (1951)을 시작으로 삼자면, 마지막으론 존 F. 케네디를 소재로 한 <버펄로> (1964)를 꼽을 수 있겠다.

<백색 페인팅> 은 존 케이지의 작품 <4분 33초>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그림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추상표현주의의 뜨거운 회화가 어떤 물적 토대 위에서 펼쳐진 연극인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어 작가는 ‘콤바인 회화’라는 새로운 문법을 개발, 당대의 예술가와 평론가 그리고 관객들이 회화와 조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추상표현주의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싸이 트웜블리, 재스퍼 존스, 머스 커닝햄 등 재능 있는 예술가들과 교유하며, 상호간에 큰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1954년 작가가 재스퍼 존스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을 때 작품은 크게 변모했다. (생전의 작가는 존스와 자신이 서로의 작업에 대한 비평가이자, 아이디어의 제공자였음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무제(흰 구두의 남자)> (1954-1955)에는, 신발과 양말에 대한 강한 성적 페티시와 함께 복잡한 사생활의 한 단면이 잘 드러나 있다. 그 일부는 이렇다.

트웜블리의 드로잉 위에 전개된 콜라주는, 어린 아들의 사진과 지역 신문에서 스크랩한 가족에 관한 기사, 성조기 드로잉(같은 해 제작된 존스의 작업을 지시)과 존스의 사진, 그리고 섬세하게 찢겨진 편지(존스가 라우셴버그에게 보낸)로 구성됐다.

이후의 작업에선 더욱 과감해져서, 키스하는 동성 연인의 사진, 주디 갤런드(전설적인 게이 아이콘)의 레퍼런스, 남성기의 이미지 등을 반복적으로 활용·제시했다.

하지만, 광적인 사랑은 지속되기 어려운 법. 1961년 라우셴버그와 존스가 결별하자, 작업에 성적인 레퍼런스가 등장하는 일은 급격히 줄게 된다. 하지만, 곧바로 최전성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당해엔 아트 딜러인 아이리스 클러트에게 보낸 전보를 작품으로 제시하는 천재적 직관을 과시했는데, 전보의 문구는 이랬다: “이는 아이리스 클러트의 초상이다, 내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이는 개념미술이 제 몸통을 형성하기 이전의 일.

질주하던 작가의 실험 정신에 제동이 걸린 것은 1964년이었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은 최초의 미국 작가가 된 그는 만월과도 같았다.

같은 해 머스 커닝햄 무용단의 무대 미술을 맡아 유럽과 아시아를 순회하는 과정에서 그의 명성은 극대화됐고 “잭슨 폴락 이후 가장 위대한 미국 미술가” 또는 “미국의 피카소”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이후 그는, ‘미국미술의 승리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화석’이 되고 말았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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