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지음ㆍ이난아 옮김/민음사 발행ㆍ520쪽ㆍ1만8,000원
도시와 작가의 이름이 한몸처럼 포개지는 조합을 우리는 몇 개 알고 있다. 더블린과 조이스, 프라하와 카프카, 파리와 랭보… 여기에 우리는 이스탄불과 오르한 파묵(56)을 한 쌍 더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묵은 ‘터키의 작가’ 라기보다는 ‘이스탄불의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밥벌이를 하고 있는 파묵이 발표한 일곱 편의 장편소설 중 <눈> 을 제외한 모든 작품의 배경은 이스탄불이다. 눈>
“내가 항상 같은 집, 거리, 풍경 그리고 도시에 매여 사는 것이 나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스탄불에 대한 이 예속감은, 도시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된다는 의미이다”라는 독백처럼, 그는 이 고색창연한 도시의 이름을 내세운 자전적 에세이에서 이 도시와 상사(相似)적으로 얽힌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여기서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은 술탄과 황금궁전, 보스푸르스 해협의 푸른물결, 아름다운 묘지…따위로 상징되는 고도의 활기와 화려함이 아니라 낡아가는, 잊혀져 가는, 사라져 가는 몰락의 정서와 가난, 도시를 뒤덮은 폐허가 부연한 슬픔과 같은 것이라고 쓴다.
자전적 에세이인 만큼, 아버지와 삼촌의 잇단 파산과 재산분배를 둘러싼 갈등, 돌아보면 문학도로서의 자양분이 됐던 유년시절의 유쾌한 공상들, 공부를 잘하는 형으로부터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빼앗아오기 위해 몰두했던 그림, 그리고 실연으로 이어진 첫사랑의 시린 추억 등 소설에서는 좀체 엿보기 어려웠던 작가의 개인사를 들춰보는 은밀한 쾌감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독자들은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서구화의 물결 속에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경계 밖으로 밀려난 주변부 지식인의 비애를 파묵의 아련한 문장 사이에서 마음껏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터키의 유명한 작가들이 찍은 이스탄불의 흑백사진과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파묵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갖가지 사진 200여장도 시선을 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