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레이 쉐이퍼 지음ㆍ한명호, 오양기 옮김/그물코 발행·436쪽·2만5,000원
고음악의 여왕으로 불리는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는 지난해 내한 때 인터뷰에서 “좋은 음악은 너무나 귀중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찾기 어려운 정적을 콘서트홀에 불러오는 힘을 갖고 있으며, 고음악은 침묵으로 가는 길이다”고 말했다. 1960년대 말부터 현대인의 소리환경 문제를 연구한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쉐이퍼 역시 이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소리에 대한 그의 연구는 역설적이게도 침묵으로 끝난다.
소음공해 문제에서 출발한 쉐이퍼의 관심사는 인간과 소리환경의 관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그는 풍경(landscape)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소리환경을 뜻하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용어를 만들고, ‘세계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이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담은 책이 <사운드스케이프> 다. 사운드스케이프>
풍경의 변화는 사진과 도면, 지도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사운드스케이프의 변화는 추론할 수 밖에 없기에 저자는 문학과 신화, 인류학, 현대의 녹음과 분석 기술 같은 여러 도구를 동원해 건축, 도시, 조경, 음향, 심리, 철학 등 폭넓은 분야를 넘나든다. 바다와 바람, 새 소리에서 출발한 사운드스케이프의 역사는 산업혁명에서 전환점을 맞는다. 전기 기구들로 인해 증폭된 소리가 전달됨으로써 음의 과잉이 시작된 것이다. 제설차와 설상차가 많아지면서 북부의 겨울에서조차 고요함이 파괴됐다.
소리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저자는 침묵의 회복을 제안한다. “알맹이 없는 헛된 상태의 부정적인 침묵이 아니라, 충실하고 완벽한 상태의 적극적인 침묵이 필요하다. 우주를 향해, 무한의 세계를 향해 의식을 확대해간다면 우리는 침묵을 들을 수 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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