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감, 두려움, 무기력, 반발심. 사상 유례없는 대대적 ‘공기업 숙정(肅正)’을 바라보는 공기업들의 복잡한 심정이다. 대대적인 기관장 물갈이와 공기업 민영화 바람 속에 놓인 공기업들이 검찰의 칼날 앞에서 다시 한번 전전긍긍하고 있다. ‘신의 직장’이라는 철옹성이 어디까지 벗겨질 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공기업 내부에서는‘검찰 수사의 의도’를 두고 하나 둘 비난하는 발언들이 나오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정환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14일 사내게시판에 비장한 내용의 서신을 올렸다. 이 이사장은 서신에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잘못된 점이 있었다면 겸허히 수용하면 되지만 지금의 여러 움직임들이 단지 거래소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면, 이를 통해 다른 무언가를 얻으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면 우리 모두 단호하게 대처하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부당한 시도를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거래소는 접대비 과다지출 등의 혐의로 부산 본사와 서울 사무실을 압수수색 당했다.
공기업들은 현재 검찰로부터 받고 있는 혐의들을 애써 축소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특혜대출 혐의를 받고 있는 산업은행 관계자는“2002년에 일어난 대출인데 왜 지금 와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일단 현재 퇴직 상태인 당시 임원과 현재 재직중인 당시 사원 2명을 대상으로 내부 조사한 결과 그런 부정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검찰이 공기업 전체를 쑤시고 다니면서, 산업은행은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하자 옛날 것까지 들추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기 팽배하다.
직원이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자산관리공사측도 “검찰이 처음에는 조직비리로 수사를 했다가 점차 개인비리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애써 ‘별 거 아닐 것’이라고 되뇌는 모습에서 오히려 공기업들이 처한 불안감을 볼 수 있다. ‘신의 직장’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철옹성을 허물지 않고 있다가, 최근 기관장 물갈이와 민영화 추진, 검찰 수사 등의 풍랑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압수수색을 받은 석유공사 관계자는 “한마디로 패닉 분위기”라고 전했다. 아직 본격적인 수사를 받지도 않은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혐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검찰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말부터 나오고 있다”며 “가뜩이나 사장 사표와 공기업 개혁 등으로 어수선한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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