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11시, 경기 안양 만안구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진단센터 차폐실험실. 하얀 방역복과 방역 마스크를 착용한 연구원 10여명이 유발(약국에서 알약을 빻는 사기 그릇) 속의 뭔가를 연신 유봉(사기로 만든 작은 절구공이)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닭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닭의 장기를 잘게 갈아 시료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원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바이러스의 외부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 공기가 차단된데다가 마스크까지 착용한 상태에서 3시간째 검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경기 수의연구사는 “갑갑하고 더운 것은 물론이고, AI 발생 이후 하루 평균 3,000여건의 시료가 밀려 들어와 손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초 전북 김제에서 AI가 발생한 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질병진단센터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됐다. AI가 서울과 부산 등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AI확진에 필요한 정밀검사 요구가 밀려들면서 24시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0여일 동안 11만건의 조류 시료를 처리했는데도, 일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 AI가 발생한 뒤에는 의뢰된 조류의 종류와 양이 이전보다 20% 늘었다. 이전에는 닭과 오리 정도였으나 이제는 까치, 비둘기, 꿩 등 시민들이 ‘AI에 걸린 것 같다’고 신고한 야생 조류가 밀려들고 있다.
검역원 관계자는 “야생 조류의 경우 정황상 감염 가능성이 거의 없고 실제로 조사하면 무분별하게 신고된 게 대부분이지만, 시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연구원 모두 토막잠을 자며 시료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역원의 노력 때문일까. 지난 주말을 고비로 AI바이러스 감염원인은 현재 대부분 밝혀졌고, AI확산도 소강 상태로 접어드는 형국이다. 박최규 수의연구관은 “공교롭게도 이번 AI바이러스가 병아리 분묘시기와 겹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돼 원인규명이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는 AI 근원지가 일부 유통시장으로 밝혀졌고, 대단위 농장 오염은 더 이상 크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달 안으로 AI는 잡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1998년 출범한 검역원은 AI로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소와 돼지 등 전국의 모든 가축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관리하고 있다. 안양 본원과 지방 각지의 6개 지원, 12개 사무소에 수의직과 연구직 등 총 585명이 근무하고 있다.
검역원은 과거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던 AI가 요즘에는 매년 발생하고 광우병과 구제역 등 대응해야 할 가축병이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정부 지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말 검역원에서는 정부 방침에 따라 34명의 인원감축이 단행됐는데, 대부분 현장에서 검역조사를 담당해야 하는 수의사무관, 수의연구관, 농업연구관, 환경연구관 등이었다.
검역원 관계자는 “AI가 크게 번지면서 4월부터 현재까지 시료 검사를 위해 구입한 약품만 6억원에 달하지만, 모두 외상으로 구입했다”고 책임은 강조하면서 지원에는 야박한 정부를 꼬집었다.
결국 검역원의 요즘 AI 대처는 일사불란한 체계가 아니라, 직원들의 자발적 희생에 바탕을 둔 임기응변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17명 인력으로 지난해 11월 발족된 질병진단센터는 사람이 모자라 2명을 다른 부서에서 파견 받고 있으며, 이번 AI 사태에도 부족한 인력 14명을 추가로 지원 받았다. 부족한 인력에, 휴일도 없이 40일 동안 격무에 시달리면서 최근에는 한 연구원이 과로로 쓰러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강문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은 “예산과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야생철새가 각종 전염병 발생의 근본 원인으로 추정되는 만큼, 상시 방역체계 및 정밀역학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미국이나 일본처럼 AI백신과 항 바이러스 분야에 대한 연구인력 보강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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