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장관 고시를 연기하기로 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고시 연기만으로 지금의 논란이 수그러들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재협상이나 별도의 한미 간 협의채널 구축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법 전문가인 최승환 경희대 법대 교수는 “정부가 고시 연기에 그치지 말고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광우병 발생 시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대국민담화 내용을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며 단순한 성명을 근거로 한국 정부가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경우 국제분쟁으로 번질 소지가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협정문에 미국 정부의 성명 내용이 담겨야 하며, 이를 위해선 재협상이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재협상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로 “검역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위생 및 검역협정에는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에도 국민건강에 대한 위해 가능성만으로 수입을 규제하는 잠정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회원국의 ‘주권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번 협정에선 이 부분이 현저히 침해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질적 부분에서도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송기호 국제통상전문변호사 역시 즉각적 재협상을 촉구했다. 송 변호사는 “수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비판여론이 비등해 고시를 연기했다면 당연히 정당한 지적을 수용해 고시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재협상이나 추가협상 말고 다른 길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재협상이 추진된다면 당연히 고시는 재협상 결과에 따라 시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 변호사는 다소 조심스럽게 협상 파기의 가능성도 제기했다. 미국 연방관보에 실린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의 ‘강화’가 사실상 월령제한 폐지의 전제조건이었는데 미국이 이를 ‘약화’시키는 조치가 협상 타결 일 주일 만에 이뤄졌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조만간 게재될 공고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 ‘기망에 의한 협상’이라고 볼 개연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통상정책을 지원해 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서진교 무역투자정책실장은 별도의 한미 간 협의채널 구축을 강조했다. “과학적 근거가 필요한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을 제안하기는 쉽지 않고, 미국 정부가 성명을 발표했다고 해서 곧바로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다.
이에 따라 서 실장은 “양국이 현재의 신뢰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거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가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더라도 분쟁으로 가기 전에 양국이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상시적 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검토 중인 별도의 합의 추진과도 일맥상통한다.
한미 FTA 조기 비준론자인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고시가 연기됐지만 원안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고시 수정을 위해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을 주장하는 것은 미 의회에서의 FTA 비준에 치명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고시 내용이 수정되지 않을 경우 국민적 저항이 있겠지만 정부가 18대 원 구성을 전후한 시기까지 고시를 유예하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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