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이 급진전되는 가운데 남북 경색은 오히려 깊어지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주도권 상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게 핵 검증 자료를 주고 미국은 50만톤 대북 식량 지원을 하기로 한 반면, 한국은 3월 말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북측의 반발로 당국 간 대화ㆍ접촉이 단절된 이후 경색국면을 돌파할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이 대통령 방미 직후 “남북대화 재개 제의를 검토한다”는 후속조치를 내놓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현안인 북측에 대한 식량 지원문제에 대해서도 ‘북측의 지원요청이 없다’는 경직된 자세만 유지하고 있다. 국제기구를 통한 식량 우회지원 방안도 외교통상부 통일부 등 부처 간 혼선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현 정세를 주도적으로 이끌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남북 관계를 풀어가야 할 통일부 장관은 3월 북측이 개성공단 발언을 문제삼은 이후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청와대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조짐이 역력한데도“통미봉납은 허용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공허한 발언만 할 뿐 상황 돌파를 위한 구체적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한반도 정세의 중대 국면마다 활발히 움직였던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할 때 현 외교안보라인의 모습은 너무 무기력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측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북한자금 동결로 인한 북미 관계 교착, 2007년 미사일 발사실험 등 북측의 도발이 계속될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실이 BDA 해결 방안을 담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만들고, 결국 미국을 움직인 게 대표적인 예다.
현재의 불균형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핵 폐기협상을 다룰 6자회담에서 우리 측의 역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해 2ㆍ13합의 과정에 핵 동결과 중유 200만톤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북측을 설득, 신고ㆍ불능화와 중유 100만톤을 끌어낸 게 우리 측의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에는 긴밀한 한미 공조뿐만 아니라 일정한 남북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남북 경색이 깊은 현 상황에서 핵 폐기와 엄청난 정치ㆍ경제적 대가를 놓고 교섭해야 하는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남북 간 양자접촉을 할지도 미지수다. 설사 양자접촉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 측을 신뢰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지가 불투명하다. 이럴 경우 우리 측은 협상 과정의 상당 부분을 미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임기 말인 부시 행정부의 협상 자세나 전략은 우리 측의 목표와 다를 수밖에 없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측이 한국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한국을 핸들링하게 될 요소가 많아질 것”이라며 “우리 측이 이니셔티브를 놓치면 굴욕적인 상황을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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