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생산비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양돈 농가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소식이 전해지며 극심한 불안에 떨고 있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와 소비자 주권, 한우 농가의 피해 등에 대해서는 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와 실질적인 가격 경쟁을 벌이게 될 양돈 농가의 직접적 피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는 점이 그들의 주름을 더욱 깊게 하는 이유이다.
지난해 1만 800호에 달했던 양돈 농가의 수는 1년 만에 7,900호로 이미 19%나 급감했다. 최근 돼지 가격이 반짝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오른 것이어서 가격 경쟁력은 여전히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현재 양돈 배합사료의 가격은 지난해 말에 비해 40% 이상 폭등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사료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양돈 농가의 경영이 악화됨에 따라 돼지를 기르는 농가의 수도 빠르게 줄고 있다. 그 중 수백 마리 미만의 돼지를 키우는 중소형 농장의 어려움이 대형 농장보다 더욱 크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1조원 규모의 사료 자금지원 사업의 경우, 많은 중소 규모 양돈 농가는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그림의 떡과 같은 지원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양돈 농가의 도산 사태는 점차 가중될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개방되면 일반적으로 한우 농가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고급 브랜드화 되어 있는 한우보다는 오히려 중저가인 국산 돼지고기, 특히 가격대가 비슷한 삼겹살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대 수요 부위인 삼겹살이 이렇다면 삼겹살 이외의 다른 부위는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으로 우려되는 우리 양돈 농가에 대한 정부 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국산 돼지의 1등급 출현율이 10%가 될 때까지 생산 장려금을 지원하겠다는 발표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사업 첫 해에는 한 마리당 100원 지원에 불과하며 만료시점으로 봐도 마리당 1,000원의 지원이 전부다. 이런 식의 정책은 장려제도인지 양돈 농가를 우롱하는 정책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양돈 농가는 이러한 주먹구구식의 정책에 분개할 수 밖에 없다.
국내 돼지고기 시장은 2014년을 기점으로 완전 경쟁체제로 들어선다. 국산 돼지고기의 경쟁력을 키우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정부는 우리 양돈 산업이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돼지가격 생산 안정제’를 통해 돼지 가격에 따른 양돈 생산 기반을 보호해 주어야 하며 냉동육이 완전 개방되는 2014년 이전에 돼지열병 청정화를 위한 예산도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축사시설의 현대화 보조비율을 높여 중소형 양돈 농가의 어려움을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양돈 농가가 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우리 양돈 농가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더불어 폐업의 불안감 없이 희망과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돼지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정일희 충남 홍성군 정일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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