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포르노 거쳐 당대의 거장으로
제프 쿤스(Jeff Koonsㆍ53)를 ‘왕년의 키치 작가’ 쯤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키치 미학 덕분에 ‘제프 쿤스’하면, ‘키치’라는 단어가 즉각 연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그의 작업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가장 키치 같아 뵈는 <메이드 인 헤븐> 연작(1989)마저도, 키치 이상의 의미를 거느린다. 쿤스는 포르노 스타인 치치올리나(일로나 스톨러ㆍ57)와 이러저러한 세트 위에서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사진, 조각 등의 작품을 제조했다. 메이드>
일로나 스톨러는, 1979년 정치에 입문해 1987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승리를 거둬 5년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전설적 인물.
치치올리나와 쿤스의 하드코어 로맨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1년 결혼한 이들은 1992년 아들 루드비히를 낳았다. 하지만, 자아가 강한 사람끼리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부부는 득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경을 맞았고, 긴 양육권 다툼이 시작됐다.
쿤스가 승기를 잡자, 치치올리나는 공동 양육에 합의했다. 하지만, 여자는 보란 듯 아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도망을 쳤다.
최근 치치올리나는 15세 된 아들의 양육비를 내라며 쿤스를 고소했다. 쿤스도 이에 질세라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자신의 거대한 강아지ㆍ초콜렛ㆍ색칠 공부 조각 등은 모두 아들 루드비히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작년에 죽은 비숑프리제 ‘릴리’(바로 그 유명한 강아지 조각의 모델)는 본디 스톨러와 함께 길렀던 애견.
사실 쿤스에게 <강아지> (1992-)는 그의 작가 경력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뉴욕의 소나벤드 갤러리에서 개인전 <메이드 인 헤븐> 을 열었을 때, 현대 미술계조차 이 포르노 해프닝에는 넌덜머리를 냈다. 메이드> 강아지>
국제 미술계는 ‘쿤스가 정도를 벗어났다’는 암묵적 합의를 본 것 같았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제외되고, 중요한 국제전시에도 초청을 받지 못하는 위태로운 형국이었다. 하지만 거장은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키는 법.
카셀 도쿠멘타에 초청받지 못한 쿤스는, 카셀 외곽의 아롤젠에 생화 6만 송이로 구성된 초대형 강아지 조각을 세웠다. 당시 주요 신문 기사에서 쿤스의 스펙타클 이미지는 도쿠멘타의 그것을 완전히 제압했다.
이어 구겐하임 미술관이 <강아지> 를 자신들의 새로운 대표 소장품으로 선택함으로써, 예술계에서 퇴출될 뻔했던 작가는 다시 헤게모니의 중심으로 귀환했다. 강아지>
오늘날 미술 시장에서 쿤스는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는 작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9ㆍ11사태 이후 경매 시스템에서 ‘전후미술’이란 카테고리와 ‘컨템포러리’란 카테고리가 분리될 때, 기준점이 된 것이 바로 쿤스였기 때문. 쿤스는 전전의 거장들과 동급이 된 최초의 생존 작가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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