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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7> 쇠고기논란 감정적 대응보다 합리적 美 설득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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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7> 쇠고기논란 감정적 대응보다 합리적 美 설득이 해법

입력
2008.05.1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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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광우병’ 논란에 대한 내 의견은 한마디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쇠고기 전면 수입요구를 너무 서둘러 받아들인 것 같다. 최종 결정을 한국 국회에 맡겼더라면 공청회를 통해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을 테고, 이명박 대통령도 정치적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참 아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1981년 미국과 일본 정부간 자동차 수입 문제를 놓고 적용했던 자율규제협정(VRAㆍVoluntary Restraint Agreements)을 한미 간 쇠고기 논란에도 원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 방법이 현재로서는 최상이다. VRA는 재협상이 아니며, 현재 한국 내에서 나타나는 상황을 감안해 한국 정부가 잘 설득하면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믿는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현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국내에서 찾으려 하기 보다는 미국 측과 서로 상의해 돌파구를 찾는 것이 더 실현성이 있어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한국 내 논란이 향후 미국의 이익과도 무관하지 않은 일이란 점을 깨닫게 해주면 VRA 협의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내가 연방 하원의원으로 경험했던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의 일이다. 대만 정부가 북한에 핵 쓰레기를 팔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하려는데 이를 자세히 알아보고 미국서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대만은 전력 공급을 거의 100% 핵 발전소에 의존한다. 하지만 첨단기술 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기존의 핵 발전소로는 이를 충당할 길이 없어 또 하나의 대형 핵 발전소 건설이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여기서 나오는 핵 쓰레기 처리였다. 대만은 원래 조그만 섬나라이기 때문에 핵 쓰레기를 자국 땅 안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이 핵 쓰레기를 수천만 달러를 주고 북한에 팔아 넘기기로 결정했고, 외화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남의 나라 핵 쓰레기를 받으려는 북한이나, 돈이 좀 있다고 핵 쓰레기를 남의 나라에 팔아 넘기려는 대만의 처사도 곱지 않게 생각됐다.

이를 어찌 막을 수 있을지 골똘히 연구했지만 초선 의원인 내 힘으로는 역부족 같아 보였다. 가장 큰 걱정은 내 지역구 주민들이 알면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비난이 제기될 가능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미국 기자들은 한국계인 나를 색안경을 끼고 보면서, 한국과 무슨 문제가 될만한 거래라도 하는지 열심히 냄새를 맡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권력의 핵심으로 나와 가까운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깅그리치 의장은 북한과 대만 두 나라가 서로 돈을 주고받으며 쓰레기를 사고 파는 일을 제3자인 미국이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고, 또 어떻게 이를 반대할 것인지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크게 실망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다른 의원들을 납득시키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한국에 전화해서 아무래도 내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하기엔 내 그 잘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명분 찾기에 골몰하다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뉴스를 보니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전남 여수 앞바다 암초에 부딪쳐 기름이 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톱 기사로 전하고 있었다. 환경보호단체들은 펄펄 뛰었다. 아차. 이거구나!

나는 곧 결의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명분을 찾았다. 수천 드럼의 핵 쓰레기를 선박으로 운송하는 도중 사고가 날 경우 바다가 온통 방사능으로 오염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수천 드럼의 핵 쓰레기를 판문점 근처에 깊이 묻기로 결정했다니, 지진 등으로 파손돼 지하수를 통해 불과 1마일도 되지 않는 남한 내 지하수가 오염되면 이를 식수로 사용하는 미군들의 건강에도 심각한 위협이 초래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핵 쓰레기를 국가간에 사고파는 전례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내가 다시 읽어봐도 그럴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깅그리치 의장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결국 내 결의안이 공화당 결의안으로 바뀌면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동일 결의안(Concurrent Resolution)으로 불리는 이 특별 결의안은 단지 미 의회의 의견(Sense of Congress)을 표현할 뿐 강제성이나 구속력은 없고, 제재 권한도 부여돼 있지 않은 하나의 메시지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결의안은 반드시 만장일치여야 된다.

미 의회에서 통과된 단순한 메시지가 영향력이 크다는 걸 그때 느꼈다. 통과된 다음 날 이 결의안은 대만 정부에 전달됐고 결국 북한측과의 거래는 중단됐다. 이때 내가 느꼈던 성취감이란 대단했다.

이 결의안을 상정했을 때 GE회장이 부사장 등 5,6 명을 대동하고 직접 내 사무실에 찾아와 수억달러에 달하는 대만의 핵 발전소 건설을 자기네가 맡았는데 어째서 미국의 국회의원이 미국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공사를 막느냐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한국 정부에서 혹시 부탁을 한 건 아니냐는 질문을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결의안은 핵 발전소 건설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핵 쓰레기만을 다룬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들은 결의안을 폐기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10여 년 전에 있었던 북한과 대만의 핵 쓰레기 거래 사례를 다소 길게 언급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측과의 자율규제협정을 논의할 명분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행정부나 의회는 설령 자기들과 생각이 달라도 합리적인 견해에는 귀를 기울이는 만큼 명분을 찾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 뭐든 안될 게 없을 것이다.

쇠고기 관련 보도들을 보면서, 한국이 어린 중ㆍ고등학생들조차 어른에 대한 공경은커녕 반발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황량한 사회로 변한 것 같아 기분이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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