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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북미 거래의 계산서

입력
2008.05.1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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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부가 머지않아 테러지원국 명단과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북한을 제외할 것 같다. 지금 분위기라면 이 달 말께도 가능해 보인다. 이런 상황 진전에 미국 내 보수파가 다급해진 모양이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태클이 거칠어지는 배경이다.

북한이 레바논의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 등 테러집단을 최근까지 지원했다거나 북한과 이란이 비밀리에 핵 거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도 그런 태클 중 하나다. 북한이 유럽 등에서 원자로 부품을 조달해 비밀리에 시리아로 보냈다는 엊그제 워싱턴포스트 보도의 출처도 행정부 내 보수파 쪽 인사라고 한다.

북 변화 이끌어낼 북미간 거래

그러나 핵 불능화 조치와 완전한 핵 신고 대가로 북한에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중단이라는 정치적 보상조치를 해주는 것은 결코 손해 나는 거래가 아니다. 테러지원국 재지정이나 적성국교역법 재적용은 북한이 그럴 만한 불법행위를 저지른다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반면 북한이 취한 조치는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불능화 처리된 핵 시설을 재가동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또 원자로 가동기록 등은 공개하는 순간 히든 카드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버린다. 미국의 보수파는 정확한 규명과 징벌이 필요한 북한의 ‘과거’에 대해 너무 쉽게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결과가 크게 불만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문제를 포함한 그런 류의 과거는 북한이 버티면 달리 어찌해 볼 길이 없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과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 제외 그 자체가 북한에 당장 큰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1987년 KAL기 폭파 사건과 관련해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올렸다. 벌칙은 무기수출 금지,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 수출 통제, 원조금지, 무역제재 등이다. 6ㆍ25 전쟁을 계기로 북한에 적용되기 시작한 적성국교역법은 북한과의 정상적인 무역거래 금지, 미국 내 북한자산 동결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에 대해서도 미국과의 거래를 금지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북한의 고립을 강제했다.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중단으로 이런 제한과 규제가 풀린다고 해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과 상거래 원칙을 따르지 않는 한 얻을 이익은 거의 없다. 즉 북한 스스로 국제규범을 지키며 국제사회로 나올 때라야만 미국이 제공하는 정치적 보상조치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적용 중단은 미국의 보수파는 물론 한국의 보수진영에서도 그렇게 갈망해 마지 않는 북한의 개방을 유인하는 조치인 셈이다.

북한의 과거 규명에 집착해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6자회담 진전을 거부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도 옳지 않다. 6자회담 프로세스 속에서 북한과 미국 등 나머지 참가국들과의 거래가 거듭될수록 북한은 일정한 정치ㆍ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만큼 과거로 후퇴하기는 어려워진다. 바로 여기에 6자회담 틀의 유용성과 힘이 있다.

북미관계의 급진전 배경에는 퇴임 전 적어도 북핵 문제만큼은 성과를 내겠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집념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의 의지도 그에 못지않게 적극적이다. 부시와 김정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어찌 보면 6ㆍ25 이후 처음 맞는 상황이다.

준비 안된 새 정부의 대북정책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물렁한 포용정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전 정권과는 다른 대북정책을 펴겠다는 생각은 옳다. 그러나 북한의 행태를 변화시킬 실질적인 수단과 정책도 없이 큰 소리만 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남북관계에서 아마추어리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권을 넘겨받은 지 아직 석 달도 안 됐다고 할지 모르지만 주변정세가 이런 사정을 봐 주지 않는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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