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마치고 나오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표정은 편치 않아 보였다. 회동 전 입가에 감돌던 엷은 웃음은 사라졌고 입술은 꾹 다물어 있었다.
두 사람은 이례적으로 배석자 없이 무려 1시간50분간 얘기를 나눴지만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의 실타래를 풀기에는 역부족인 듯 했다.
이날 대화 주제만을 놓고 보면 그럴 듯 했다. 친박 복당 문제와 친박에 대한 검찰수사,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 껄끄러운 현안이 논의됐다. 그러나 화음은 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작심한 듯 쓴소리를 쏟아냈고, 이 대통령은 가급적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채 주로 듣는 쪽이었다. 박 전 대표는 회동 후 ‘신뢰를 회복했냐’는 질문에 “애초에는 신뢰를 했다. 그런데 제가 신뢰를 깬 게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회동 결과가 불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우선적인 현안은 복당 문제였다. 이 대통령은 “(복당에) 거부감은 없다. 그러나 당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이 공식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자 이 대통령은 “당의 공식절차를 밟아서 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공식적인 결정을 무한정 끌고 갈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고, 이 대통령은 “(7월) 전당대회까지 끌고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논의의 진전은 없었다. 박 전 대표는 회동 후 “(복당에 대해)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제 입장은 확고하다”고 선을 그었다.
친박연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예민한 문제였다. 박 전 대표는 “청와대가 매일 검찰에 전화를 넣는다는데 잘못된 것 아니냐”며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그럴 리가 있겠냐. 청와대가 관여할 수도 관여해서도 안 된다”며 “알아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겠다”고 답했다.
쇠고기 파동과 관련, 박 전 대표는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할 일이지 이념 문제는 아니다”며 “협상과정이나 대처에 잘못된 부분도 있다. 국민이 납득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국민이 납득할 대책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그렇게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또 “대통령이 되면 민심과 동떨어진 보고를 받거나 밑의 일을 잘 모를 수 있다”며 “국민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밀고 나가기보다는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뼈있는 당부였다.
이날 당 대표나 차기 총리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이 대통령은 “나라일이 잘 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고, 박 전 대표는 “저는 제가 판단해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대통령이 말을 안 해도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냉랭하게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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