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10만원도 못 벌던 스물여덟 살 때, 한 1년간 결혼식에도 안 갔고,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밥값 술값 걱정부터 되었다. 내가 돈이 없으니 얻어먹어야 되는데, 얻어먹는 비루함이 싫어서 아예 안 만나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문상에는 갔어야 했는데, 부조금은 고사하고 차비를 마련하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돈을 빌리기도 어려웠다. 돈을 언제 갚을 지 확신이 없었고, 확신도 없이 빌려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문상에 가서 지인들을 만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하나도 못 벌고 사는 것이. 경조사는 챙길 수 있을 만큼 살게 된 뒤에도, 무슨 자리에 가려면 항상 돈 걱정부터 든다. 내가 다 내야 하나? 그가 낼까? 내가 내면 내 돈 나가서 싫고, 그가 다 내면 그한테 미안해서 싫고. 그래서 나는 더치페이가 좋다.
나는 가능하면 외국 것을 폄하하고, 십시일반 하는 문화보다는 누구 한 사람이 ‘화끈하게 쏘는’ 문화 속에서 근 이십 년을 살았지만, 더치페이만큼은 그 합리성을 추켜세우고 싶다. 통 크고, 속 넓은 이들은 ‘쪼잔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만원짜리 한 장에도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소심한 이들에게, 공평한 배분만큼 편한 것이 또 있을까.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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