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정부가 사사건건 마찰음을 내고 있다. KDI가 1970년대 이후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발전의 청사진과 정책적 이론을 충실히 뒷받침해온, 대표적 싱크탱크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KDI는 12일 발표한 ‘2008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경제정책 운용”을 주문하며 ‘성장 중심’의 정부와 각을 세웠다. 마치 재정, 금리, 환율 등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경기를 띄우겠다는 기획재정부에 제동을 거는 듯한 모양새다.
경제성장 5%도 어렵다
KDI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지난해 10월) 5.0%에서 4.8%로 낮췄다. 정부 목표치 6%에 한참 미달하는 수준이다. KDI는 올해 1분기에 5.7% 성장했지만, 2분기 4.7%, 3분기 4.6%, 4분기 4.1%로 급격히 하강곡선을 그릴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 경제가 경기둔화로 전환하고 있다”는 KDI의 판단에는 이미 폭 넓은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한국은행도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수출은 호조를 띠고 있지만, 민간소비(4.5%→3.0%) 설비투자(6.2%→2.4%) 건설투자(4.3%→2.2%) 등 내수가 위축되고 있는 게 문제다. KDI는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등과 함께 환율 상승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KDI는 유가와 실효환율을 작년 전망치보다 각각 33%, 13% 오른 배럴당 100달러와 달러당 980원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원래보다 1.3%포인트 높인 4.1%로 수정했다.
동일한 진단, 다른 처방
KDI와 정부 모두 우리 경제가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 해법에 대해선 시각 차가 분명하다. 정부는 ▦추경 편성 ▦금리인하 ▦고환율로 움츠러드는 경기를 살리겠다는 입장인 반면, KDI는 성장보다 물가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조동철 KDI 선임연구위원은 “경기가 올라가면 조금씩 내려가는 건 비교적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며 “경기둔화에 화들짝 놀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도 금리인하 압박을 가하는 재정부에 반대하고 있다. 보고서는 “통화당국의 물가안정 의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가능성을 차단하며, 물가안정 여부와 내수둔화 추이를 주시하면서 신중히 운용해야 한다”며 물가안정을 강조했다. 환율 상승이 수출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정부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조 연구위원은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은 세계 경제상황 변화에 따른 수요 변화이며, 환율의 영향은 과거보다 줄었다”면서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소신발언 잇달아
KDI의 독자 노선은 새 정부 출범 전부터 감지돼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7% 성장 공약에 대해 “5%도 어렵다”는 입장을 지켰고, 정부의 유류세 인하방침도 강하게 비판했다.
KDI는 8일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물가 급등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해 내심 금리인하를 기대하던 재정부에 찬물을 끼얹었다.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해서도 재정부의 메가뱅크 방안에 반대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경제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보니 경제 전문기관인 KDI가 견해 차를 드러낼 기회가 많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KDI 관계자는 “경제부처나 연구기관이나 현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려 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며 “방향의 차이라기보다는 시기나 폭 정도의 차이일 수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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