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형, 우리 그곳에 함께 가시죠.
전주로 맛기행을 떠났다가 발견한 카페인데요, 그곳 맥주잔에 문득 형의 얼굴이 오버랩됐습니다. 완산구 경원동의 골목길에 자리잡은 허름한 건물 2층의 ‘새벽강’이란 곳입니다. 빨간 간판엔 상호보다 ‘술’이라 크게 쓴 글씨가 훨씬 도드라져 보이는, 술꾼을 위한 공간입니다.
전주의 문인, 소리꾼, 화가들의 아지트란 얘기를 듣고 찾아갔습니다. 20여명이 앉을 만한, 그리 넓지 않은 그곳엔 어둑한 조명 아래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주거니 받거니 술잔 오가는 소리로 북적였습니다. 마침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을 수 있어서 살점 두둑한 북어포를 뜯어가며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한쪽 테이블에서 지긋한 노신사가 일어나더니 “노래 한 소절 불러도 좋겠냐” 하더군요. 모두들 박수로 청했고, 청아한 가락이 흘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이번엔 그 옆 테이블에서 그림을 한다는 젊은 분이 일어서서는 깊고 굵은 목소리로 흥겨운 민요를 불러 제꼈습니다. 창가에 있던 북과 꽹과리, 징이 흥을 돋웠고, 어깨를 들썩이며 쳐대는 손뼉 소리가 추임새가 되었습니다.
노래에 감동한 어떤 분은 그쪽 테이블로 맥주 3병을 보내며 인사를 했고, 흥을 돋운 그 가수는 컬컬한 목을 축이며 고마워했습니다. 테이블을 돌며 장기자랑은 이어졌고 노래를 못하는 이들은 우스개소리로라도 흥을 이어갔습니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인데도 달뜬 분위기는 좀체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그 몽롱한 자유 속에는 “쓰잘 데 없는” 정치 얘기, 부동산 얘기가 끼여들 틈이 없었습니다. 대신 모두들 음악을 이야기하고 그림을 논했습니다. 그 소리들이 제겐 모두 시처럼 들려왔습니다.
문득 10여년 전 서울 인사동의 ‘연못’이나 피맛골의 ‘시인통신’에 앉아있던 제가 떠올랐고, 그 곁을 언제나 함께 했던 형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보냈던 서럽고도 유쾌했던 그 청춘 말입니다. 술에 절고 사람에 젖던 그 시절. 한껏 취기가 올라선 바다가 보고파 무작정 동해로 향하곤 했던 그때가 기억나십니까. 혹시 잠시라도 저와 함께 그때로 돌아가보고 싶지는 않으신지요.
시간 한 번 내 주십시오. 이번엔 제가 쏘겠습니다.
L형, 우리 그곳에 함께 갑시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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