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지 않으면 당장 잡혀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의 호칭을 바꾸는 일이 권위주의 청산의 대명사처럼 부각됐다. 영어로 ‘Your Excelleny’라는 말을 ‘閣下’라는 말로 바꾼 연유도 궁금하지만, 한 시절을 호령하던 이름을 ‘특정 고급 관료를 지칭’한다고 짧게 짚고 넘어간 국어사전의 해설은 너무 메마르다.
마침내 김대중 정부 때 ‘각하’는 폐기되고 ‘님’으로 바뀌었다. 그네들이 과연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나, 왠지 어색하고 웃기는 짓거리였다. 대통령님이라니…. 각하면 권위주의이고 님이면 민주주의란다.
▦ 그것도 모자라,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 ‘님’도 없애자는 얘기가 나왔다. 결국 의전적으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없었던 일이 됐단다.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한다는, 실용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이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엉뚱하게 유탄을 맞은 것은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이다.
‘작은 정부’의 상징처럼, 두 조직은 해체되고 대통령실로 통합됐다. 많은 사람들이 류우익씨를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대통령 실장이 공식 직함이다. ‘4실장 10수석’이던 청와대 직제도 ‘1실장 7수석’으로 줄었다.
▦ 류 실장이 얼마 전 청와대 직원 400여 명을 모아놓고 “개개인들이 모두 ‘내가 대통령’이라는 생각으로 일해달라”고 주문했다. ‘일체감 조성을 위한 직원 워크숍’에서다. 그는 “자정이 넘어 ‘오늘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뿌듯하게 퇴근하려는데, 대통령 집무실에 불이 켜져 있길래 경호팀에 물어봤더니 ‘대통령께서 관저로 퇴근했다가 다시 나와 일을 하고 계신다’고 말하더라. 그 일을 계기로 나도 마음을 새로 다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정권교체를 위해 본인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이명박 철학’을 터득하자고 당부했다.
▦ 류 실장은 또 ‘이명박식 사고’를 강조했다. 그게 뭘까. 흑묘백묘(黑猫白猫)니 남파북파(南坡北坡) 등 중국식 표현도 많지만 우리 말로는 ‘꿩 잡는 게 매’라는 뜻일 게다. 이른바 실용주의다. 그런데 류 실장에게 되묻고 싶다. ‘이명박식 사고’가 뭐냐고? 미국 쇠고기가 온 나라를 뒤흔드는 때에, 이 대통령은 도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국민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값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자더니, 난데없이 국민 생명이다. 장막 뒤에 숨어 있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장이기에 이런 얘기가 가능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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